『한국은 종교가 없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것입니다』어니스트ㆍ홀 목사는 이런 말로 그의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개화기 우리나라에서 활동했던 미국선교사중의 한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한국은 오늘의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에 먹히기 직전 구대한제국이다.
그의 강연내용은 1910년,바로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탄되던 해 3월,뉴욕에서 출판된 「중국과 극동」이란 책에 실려있다. 이 책은 미국의 명문 클라크대학 창설 2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그 대학 역사학과 학술회의의 발표논문집이다. 책머리에 실린 과장 조지ㆍ블레이크슬리 교수의 발제강연은 『지중해시대는 미대륙의 발견과 함께 끝났다. 대서양시대는 지금 절정기를 맞고 있다. 이들보다 더 위대하게 마련인 태평양시대는 지금 바로 동이 트고있다』고 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ㆍ루스벨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당시 왜 동아시아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열렸는지를 알만하다.
이 책을 보면 학술회의에서 강연한 동아시아 전문가는 모두 49명이다. 이중 「중국과 극동」에 실린 강연록은 모두 22편중국관계 16편,일본관계 3편,한국관계 3편이다.
이 한국관계 3편의 강사는 우리나라에 온 미국의 첫 선교사이자 한말 미국 전권공사였던 호레이스ㆍ앨런(연제 한국의 깨어남) 이등박문의 조선통감 시절 그와 함께 우리나라에 왔던 예일대학 교수 조지ㆍ래드(연제 일본의 한국통치),그리고 홀 목사(연제 한국의 종교사정) 등이다. 이들 강사 3사람의 경력과 연제에서 짐작되듯,앨런 공사의 강연은 비교적 객관적인 한국사정의 설명,래드 교수의 강연은 일본통치의 극구찬양,홀 목사의 강연은 한국에서 있은 기독교 선교사업의 경이적인 발전을 강조하며 미국사람들의 관심을 호소한 내용이다. 그 무렵 미국사람들이 지녔던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망라했다는 점에서,이 강사진은 완벽했다고 할 만하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외부세계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고,그 때문에 우리나라에 대한 희한한 속설도 많이 퍼져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한국민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가 없는 백성이라는 것이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아,유교는 종교일 수가 없고,불교사찰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산속에 자리해 있었던 사정 등으로 해서,잠시 서울이나 개항장을 다녀간 서양인 여행자들이 그런 말을 퍼뜨린 것이다.
앞에 인용한 홀 목사의 강연서두는 이 속설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유교 불교 무속 등을 개괄해 설명하고 한국사람들이 매우 종교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한국사람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도,명상할 때는 불교도,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무교도가 된다」는 것이다.
홀 목사는 이와 같은 한국사람의 종교심이 기독교로 돌아서서 한국은 「모든 역사상 기독교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인 나라」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높은 곳에 올라 한국전토를 바라 볼 수가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방방곡곡에 나부끼는 흰바탕에 적십자를 그린 교회 깃발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겨우 선교 4반세기의 놀라운 성과이다. 그는 앞으로 4반세기가 지나면 세계 역사상 마지막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이 「비기독교국이 기독교화하는 첫번째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의 강연록은 지금 읽어도 매우 감동적이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가 어떠했는지를 방불케 한다. 그것은 기도하는 교회,전도하는 교회,나눔이 있는 교회,하나된 교회다. 그 실상을 말하는 그의 체험담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쌀 예수쟁이」(Rice Christian)란 말이 있습니다. 선교를 하려면 물질적인 혜택으로 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하면,해방뒤 구호품을 받기 위해 교회에 간다는 「나일론 교인」의 비아냥이 그때 이미 있었던 것이다. 홀 목사는 그런 비아냥이 한국교회와 무관함을 자기의 체험담을 들어 강조한다.
『1907년에 장로교노회를 결성하면서,그 첫사업으로,우리는 제주도에 한국인 선교사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보를 낸 사람중에 벼농사를 짓는 3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십일조를 내고 있었으나 연보를 더 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수중에 돈이 없었으므로 이들은 자기네가 지은 쌀을 팔아 수수로 양식을 대신하고,남은 돈을 선교비에 보탰습니다. 미국돈으로 6달러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당초 한사람만 보내기로 했던 선교사를 세사람이나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미국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쌀 예수쟁이」가 있은 것이다.
60여년을 지나서,오늘에 읽는 홀 목사의 강연록은 오늘의 한국교회를 생각하게 한다. 홀 목사의 말투를 빌리면,방방곡곡 적십자깃발 대신 적십자 네온불빛이 이땅의 밤 하늘을 물들인다. 홀 목사는 그때 1천5백여 적십자깃발을 셀 수가 있을 것이라고 감격해 했지만,지금 그 수효는 3만16개에 이른다. 교인은 1천46만명,성직자만 4만5천명이다(기독교대연감).
이 숫자만으로 하면 홀 목사의 「예언」은 적중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기독교인이 그토록 많은 이 나라가 얼마나 기독교화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의 한국교회가 과연 홀 목사를 감격시킬 수 있을까. 홀 목사는 그때의 한국교회가 한국인의 「이상을 바꾸고 윤리적인 바탕을 이룩」했으며,「새로운 국민적인 일체감」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지금의 한국교회 역시 그러한가.
이달 들어 한국 개신교는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을 본격화 했다. 40분50열된 한국 개신교가 모처럼 보여준 하나된 모습이다. 그렇기에 「쌀 나누기」는 그 원래 취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눔을 통한 한국 초대교회의 재생을 생각케 하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기독교인이 그야말로 베품의 「쌀 예수쟁이」가 되는 것그 기대는 구호를 기다리는 가난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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