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체제가 빛을 잃어가면서 유럽대륙이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형서돼 가고 있다는 조짐이 요즈음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개혁ㆍ개방바람이 「철의 장막」에 종말을 가져온데서 시작된 유럽대륙의 격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말을 볼지는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다.그러나 미ㆍ소가 획기적인 군비축소에 합의하고,냉전의 장벽이 허물어진 지금 유럽의 동ㆍ서가 현실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서서히 통합과 새로운 균형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않다.
그 핵심을 두말할 것도 없이 유럽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독일이 통일의 문턱에 와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서독의 콜총리는 『2년 안에 독일통일이 실현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샤우에블레내무장관은 한술 더 떠서 『3월총선 후 동독에는 더이상 정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한국일보 24일자 1면보도).
사실 동독은 이미 서서히 소멸돼 가고 있다. 3월18일로 예정된 총선거는 서독 기민당과 서독 사민당의 후원을 받는 동독 기민당과 동독 사민당이 일종의 「대리전쟁」을 치르는 선거가 되고 있다.
또 동ㆍ서독이 원칙적인 합의를 본 「통화통합」은 사실상 동독의 「경제적 소멸」을 뜻하게 될 것이다.
통일독일의 위치를 둘러싸고 동ㆍ서독과 미ㆍ소가 각각 다른 입장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동ㆍ서의 군사적 경계선을 지키는 테두리 안에서 「우선 통일」을 하자는 서독의 제안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독일통일과는 별도로 이미 유럽공동시장(EEC)은 92년에 경제적으로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시장」(새뮤얼슨교수)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스탈린이 대포와 탱크로 묶어놨던 중부유럽의 소련 위성국들은 이제 「동유럽」이 아니라 「유럽의 일원」으로 복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 14일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열린 바르샤바동맹과 북대서양동맹(나토)의 외무장관회의가 있은 뒤 『통일독일은 북대서양동맹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아직도 대결체제 속에 있는 우리로서는 유럽대륙의 이러한 역사적 전환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세상은 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동유럽을 지배해온 「공산당운동의 종말」이 가져온 것이다. 그 대신 동유럽은 이제 「인간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이념과 체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것을 모스크바측은 「사회주의운동의 제2의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와 이념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서유럽의 체제와 이념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일 뿐이다.
지난 19일 동ㆍ서유럽의 9개국에서 일제히 발표된 동ㆍ서유럽 8개국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유럽이 이념적인 장벽을 허물어가고 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동ㆍ서 모두 이제 공산당운동은 죽었다고 보고있다. 그러면서도 동ㆍ서 모두 극좌를 배격하는 것처럼 극우적인 시각도 거부하고 있다.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이 우세한 나라는 영국 뿐이었다. 소련사람들도 사회민주주의의 모델로 스웨덴을 꼽았다. 또 서독과 프랑스사람들은 각각 자기나라를 사회주의의 모델로 꼽았다.
92년에 유럽공동시장이 세계 최대의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것과 함께,동ㆍ서의 장벽이 무너진 유럽대륙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될 판이다. 인구가 일본의 절반밖에 안되는 서독은 지난해 무역흑자가 일본을 앞질렀다. 엄청난 잠재력의 땅,유럽대륙이 어디로 갈 것인가,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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