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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어쩌다 여기까지… /배기철 사회부장(데스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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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어쩌다 여기까지… /배기철 사회부장(데스크진단)

입력
199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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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력이 너무 오래 표류하고 있다. 공권력은 있으나 치안은 실종돼 있고 검찰과 경찰은 분명히 있으나 수사는 보이지 않는 범죄무방비 상태속에서 국민의 불안과 공포는 이제 짜증과 분노로 끓어 오르고 있다.한달 가까이 계속된 도깨비불장난이 고개를 숙이는 듯한 순간 칼잡이들의 인간도살극이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무나 당해도 좋다는 비열한 도깨비불장난이 수그러든 까닭이 헌병과 50만 민방위대원을 동원한 탓인지 현상금을 5천만원이란 사상 최다액수로 올린 때문인지 혹은 놀라게만 하려다 사람이 타죽자 되레 놀라 그만둔 것인지는 아직 알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건 수사력만으로 범행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찰관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총비상 태세 속에서도 불길을 따라 허둥대기만한 치안력의 한계에 실망한 국민들은 치안력을 아예 무시해버리고 나선 조직 폭력배들의 활극 앞에 할말을 잊고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혹자는 오랜세월 시국치안에만 매달려 어느 한쪽만 바라보고 뛰어온 검ㆍ경의 체질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민주화와 자율을 소화해내지 못한 6공정부 특유의 우왕좌왕 분위기 탓이라는 사람도 있다.

또 권위주의 시대의 울트라 폭력이 퇴장하자 그 공백을 차지하려는 조무라기 폭력이 날뛰기 때문이라는 소리도 있다.

모두가 일리있는 말이고 나름대로 정확한 진단을 내린 측면도 있다. 한사람 눈치만 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스스로의 권능과 책임을 인식,할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위아래 할것없이 같은 상태였던 만큼 기구와 인력 장비를 한껏 갖추고도 해야할 일을 발견하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분위기로 몰아가기는 쉽지않으리라.

초월적 공권력의 공백론도 수긍이 간다. 군사문화 정보정치 시대의 막강한 물리적 힘이 누리던 단맛을 주먹들이 대신 차지하려 들면서 공권력 무시풍조까지 팽배해졌고 각종 범죄심리가 장마에 독버섯 피듯 번진다는 것이다.

진부하긴 하지만 치안담당자들의 항변도 치안부재 상황을 설명하는 한 부분이 된다.

통칭 13만 경찰이라고 해봤자 실제 민생치안을 담당하는 수사인력은 8천명 뿐이며 지 파출소 외근인력 2만5천여명을 합쳐도 기동화 광역화하는 범죄를 제압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찰 1인당 담당인구가 6백35명으로 미국(3백55명) 서독(3백15명) 이탈리아(3백27명)의 두배 수준이고 일본(5백55명) 보다도 훨씬 열악한 상태이다

지난해 전국의 총 범죄발생 건수가 1백4만3천건이었으니 전국 수사경찰은 1인당 1백30건 가량을 처리해야 했던 셈이다.

이런 업무량속에서 신속하고 지속적인 수사를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인구 5만명 이상을 담당하는 파출소가 60개나 되고 3만명이상도 1백55개인 것을 보면 인력부족에 이론을 제기할순 없다.

그뿐인가. 시위진압 경호 경비등 우선적 업무가 많아 수사형사 대부분이 타업무에 차출당하기때문에 수사업무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일반 기업수준을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보수도 치안능력을 약화시키는 절대적 요인이다.

20만원을 간신히 넘는 순경 초봉은 10년 근속후 모든 수당을 합쳐봐야 일반 대기업의 대졸사원 초임에도 못미친다.

근무여건이 어렵기는 검찰도 마찬가지. 검사들의 담당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 여유있는 수사를 할 처지가 못되는건 틀림없다.

그러나 이 모든 사정과 악조건이 치안력을 표류시키고 있는 모든 원인이라고 강변할순 없다.

밤은 물론 대낮에도 부녀자가 마음놓고 나다니지 못하고 밤이면 택시운전사나 택시를 타려는 승객이나 다같이 경계하고 의심하는 한심한 치안 후진국으로 전락한 현실을 앉아서 개탄만 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멀리 가지않더라도 지난 82년 우범곤 순경의 총기난동사건 뒤 경찰은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분발하겠다고 선서했다. 그 뒤로도 수많은 고문수사 독직ㆍ은폐사건이 터질때마다 국민에게 용서를 빌었으나 정신자세가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는 경찰 스스로가 잘 알것이다.

검ㆍ경이 다 만찬가지지만 능력과 자질보다 지연ㆍ학연이 앞서는 인사풍토 속에서 일하는 보람과 사기가 높아질리 없는 노릇이며 충성심과 존경이 우러나올 수도 없다.

물의가 빚어지면 불문곡직 인사조치부터 하는 필벌만 있고 신상은 없는 풍토도 전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치안공백 수습의 책임을 검찰과 경찰만 져야 한다는건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이 아니다.

며칠전 민생침해범죄에 전면전을 선포한 법무부장관의 전의가 어느정도인지 아직 가늠키 어려우나 치안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차원의 결단이 시급한 시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구국의 결단과 신사고가 투입돼야 할 곳은 바로 치안력 증강이다. 임금이 누군지 모르게하는 정치와 인간도살극을 방치하는 정치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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