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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김창열 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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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김창열 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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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거장(master) 정치인 답다』고 했다. 「뉴스위크」는 그가 『예상했던 것 보다 재치 있는(adroit) 정치인임을 보여주었다』고 해설했다. 찬사에 가까운 말들이다.우리나라의 3당통합을 보도하면서,이들이 지칭한 「그」는 바로 노태우대통령이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기사와 함께 슈퍼ㆍ맨 만화를 싣고,제목은 숫제 「슈퍼ㆍ노」라 붙였다. 그의 상대역인 양김은 그발밑 저아래,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밖에서 본 3당통합의 의미,통합 3주역 각기에 대한 평가를 알만하다.

기사투로 보아,이들 주간지가 「슈퍼ㆍ노」를 괄목(괄목=눈을 비비고 다시 봄)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그 필자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10년전 그는 이름없는 외별 장군이었다. 2∼3년전만 해도 그의 정치역량은 미지수나 다름없었다. 거의 요행으로 대통령이 되기는 했으나,그에게는 12ㆍ12로 비롯된 5공의 너울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정치신인이 30년 경력의 정치 베테랑을 좌ㆍ우에 세우고 등장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수 밖에 없다.

그를 괄목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괄목이란 원래 사람이 변했음을 놀라워 하는 말이다. 중국고사에 『선비와 헤어져 사흘이면,눈을 비비고 상대해야 한다=사별삼일즉당괄목상대』라 한 것이 그 전거다. 이 고사는 사람의 학식이 어느새 부쩍 늘어서 몰라보게 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괄목하는 것은 경위가 좀 다르다. 사람이 변했다기 보다는,사람을 달리 보게 되었다는 뜻의 괄목이기 때문이다. 그가 표방하는 대로,그를 「보통사람」으로만 생각했더니,사실은 「무서운 사람」이더라는 얘기다.

그런 뜻에서,『물 태우 물 태우 하지만,물무서운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는 어떤 대학교수의 말은 과연 명언이다. 그 교수의 경귀는 손도 안대고 전대통령을 산사로 보낸 그를 홀홀하게 보아서는 안된다는,재야사람들을 향한 경고였다.

그 교수가 말한 「손도 안대고… 」가 얼마나 적중한 해석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그의 주변에 「사상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가 5공청산의 너울을 벗는 값으로 의원배지를 내 놓은 그의 육사동기생,대권운운의 소문만 요란하다가 3당통합과 함께 잠잠해진 그의 처남,그의 집권 길을 예비했으면서 통합여당에서는 「비주류」로 분류될 수 밖에 없는 이른바 6공 정권인수팀의 면면들­. 그리고 정계개편 흥정에서 그의 말을 수월케 넘겼다가 나가 떨어진 제1야당 총재도 그 「사상자」 명단에 든다. 그렇다면 그와 3당통합의 맞상대였던 다른 야당총재가 그명단에 끼지 않으리란 보장은 또 무엇일까.

의도적이었든,결과적이었든,그의 대인관계에서,우리는 이처럼 「무서운 사람」의 일면을 본다. 좋게 말해 사정을 끊음이요, 달리보면 의리에 어긋나는 일도 참는 것이다. 정치인의 인간관계를 하나의 게임으로 본다면,그의 득점은 괄목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무서운 사람」으로서의 그의 특성은 그의 정책 행태에도 나타난다. 6공의 경제정책은 하나처럼 겉돌아서 요즘도 말이많다. 소리높여 외쳤던 개혁정책은 하나처럼 주춤거린다. 그런데도 그에게 흠을 돌리는 일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마치 무슨 요리를 해도 눋지 않는 테프론코팅의 튀김냄비 같다. 그의 테프론성 역시 괄목감이다.

그가 「무서운 사람」인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조직이라는 「월계수회」가 그런 생각을 깊게 한다. 대통령선거를 위해 만들었다는 그 사조직이 선거뒤에도 계속 잠행하다가,오히려 3당통합 뒤 그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고있는 것이다. 이것과 요즘 말하는 「차기」「차차기」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우연히 그가 지난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펴낸 책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보니까 이런 말이 나온다.

『민족교육세대의 역할은 무척 중요할 것이며,또한 그들 가운데서 1993년에 취임할 제14대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교육세대란 일제교육을 안받은 시대를 말한다. 그 세대의 전형은 45년이후의 국민학교입학생,더 엄밀하게는 미군정교육도 안 받은 48년 정부수립이후의 국민학교 입학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그세대의 선두주자를 우리는 알고있다. 48년 국민학교에 입학,지금은 월계수회를 사조직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슈퍼ㆍ노」를 괄목하게 만들었던 그는 이제 「포스트ㆍ노」를 괄목하게 만들 대계도 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과연 「무서운 사람」이다.

그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는 대통령의 이상형으로 미국의 제33대 트루먼대통령을 꼽고있다. 그는 재임중 시골뜨기란 혹평을 듣기도 했으나,「주어진 상황에서 성실하고 겸허하게」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소련의 팽창을 막고,제2차대전의 전후부흥을 이룩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말에 틀림은 없다. 이 책의 저자가 트루먼을 본떠 「보통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도 마다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트루먼론은 빠뜨린 것이 있다. 그것은 트루먼의 대통령직 수행은 다른 무엇보다도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고 했던 그의 좌우명으로 요약된다는 사실이다. 직역하면 「사슴은 여기 머문다」는 뜻의 좌우명이다. 이 말은 서부시대의 총잡이들이 포커를 하면서,카드를 돌리는 딜러앞에 사슴 뿔(Buckhorn)로 장식된 단도를 놓았던데서 연유한다. 이 좌우명을 지켜 트루먼은 일본에의 원폭투하,한국전참전,대소전략을 결단했던 것이다. 정작 우리에게 아쉬운 것도 트루먼의 이런 면이다.

마침 내일(25일)은 노대통령의 취임 만2년이 되는 날이다.

「보통사람」이든,「무서운 사람」이든,그의 임기 중후반에는 다름아닌 치적에 괄목하는 것이 있기를 기대한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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