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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말(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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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말(사설)

입력
1990.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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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의 가장 큰 흠은 신뢰성이 약하거나 없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이렇게 된 책임은 정치인 자신에게 돌아간다. 말의 성찬은 푸짐하지만,그 말속엔 진실의 알맹이가 없어 좀체 믿어지지가 않는다.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식언을 예사롭게 여긴다. 공약을 믿기는 커녕 공약으로 비웃는 풍조가 만연되었다. 정치발언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안들을 만큼 신용을 크게 잃었다. 당리당략 차원의 정쟁과 이러한 신뢰성의 상실이 우리 정치에 언제나 낙제점을 매기는 큰 이유이다. 두가지 장애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정치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믿을수 없는 정치는 무엇보다 국민에게 큰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치인의 말은 오늘과 내일의 지표이어야 한다. 특히 정치지도자의 한마디는 중천금같은 무게를 지녀 국민에게 확신과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함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불안과 혼란은 닥치게 마련이다.

충격적인 정계개편을 전후하여 우리는 또한번 불신의 늪을 헤매게 되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화려한 정치무대의 막후엔 비밀스런 흥정과 협상이 있을 수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애드벌룬형식으로 국민의사를 타진하거나 연막전술로 진행과정을 가리는 정치의 술수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진실을 호도하는 허언만은 용서받을 수 없다.

정계개편설이 떠돈 것은 오래 되었다. 구체적인 발설은 민정당 전대표위원의 발언에서 나왔다. 세상이 발칵 뒤집힐듯한 구상은 사실무근이라는 질책으로 없었던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그의 말대로 정계개편이 현실로 재연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또 하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노대통령의 연두회견 발언내용에 대한 것이다.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런데 현실은 정작 다른 방향으로 굴러간다.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정계개편 자체는 아니다. 숨길 것은 숨기면 그만이지,왜 사실과 다른 말을 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드는지 그게 답답할 따름이다. 지도층의 발언이 이쯤 난삽해서야 누가 믿고 따를지 걱정이 앞선다.

국민이 모르는 국민을 위한 정치는 베풀어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지도자의 말은 신념과 정직에서 우러 나와야 한다는 게 변함없는 소신이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말에 대한 책임회피식 태도이다. 발언에 문제가 생기면 언론등 제3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의도가 잘못전달되었다고 발뺌을 하는 일이 많다. 이것도 무시못할 정치불신의 요인이라 할 것이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념의 일관성과 정직성이다. 임기응변으로 당장을 모면하려 들면 파장은 더욱 커지고 만다. 괴롭더라도 바른말을 하며 난관을 헤쳐 나가야 국민이 안심하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번 정계개편을 계기로,우리는 정치인들의 뼈아픈 자기 혁신을 요구하는 바다. 정치불신이 있는 한 정치안정은 기대 못한다. 정치인은 발언을 되도록 신중하게 하되,책임을 끝까지 지는 단호한 의지를 가다듬기 바란다.

정직과 신뢰를 잃은 정치는 국민의 버림을 받는 법이다. 기교의 정치보다 우직한 정치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임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믿음은 태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을 우리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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