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지원 선별해 입김강화」 논의/“일 같은 정경복합체 구상” 소문도정계개편을 적극 환영하고 나선 경제계는 앞으로 기업의 목소리가 현실정치에 크게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펴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 시점에서 정계개편에 대해 여러가지 주문을 낸다는 것은 모양상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고 판단,「적극환영」외에 뚜렷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지만 기업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데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고 있다.
이같은 시각의 저변에는 이번 보수대연합을 일본 자민당의 경우와 비교하고 있는 것과 관련,자민당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본 경단련과 우리 전경련과의 비교도 불가피 하다는 분석이 깔려있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정계개편은 일본 자민당이 모델케이스가 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우리 재계의 역할도 경단련의 경우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가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표」와 「돈」이다. 특히 정치자금의 경우 이미 재계일부에서 평민당을 지원대상에서 제외시킬 듯한 발언이 공공연히 나돌았는가 하면 이달초 전경련회장단 신년기자회견에서 유창순회장이 『앞으로는 정치자금을 주는사람의 의지가 분명히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선별지원설이 설득력 있게 유포됐다.
이와 관련,전경련의 한 고위간부는 『한 정당에 얻어터지면서까지 돈을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주장,정치자금을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차원으로 개선시킬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즉 과거와 같이 어느 재벌의 정치자금이 어떤 정당,어느 정치인에게 돌아가 어떻게 쓰였는지도 모르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으리란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는 기업이 정당뿐만 아니라 특정 정치인을 「키우는」 현상도 가능하리라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정치인들에게 가장 예민한 표의 경우도 내각책임제하에서는 기업측이 정치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요소.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회원사의 전종업원 및 가족까지 합치면 6백만표가 나온다고 전제,정치인들이 재계의 눈치를 보지않을 수 없는 시점이 곧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자민당이 경단련에 기대고 있는 것도 사실 정치자금보다는 무더기표의 향배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기업주가 종업원의 투표성향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칠수는 없지만 상당한 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는 점은 인정될 수 있다.
앞으로 재계의 입김이 상당히 커지리라는 또다른 징후를 박태준 포철회장의 민정당대표위원 선임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재계중진인 박회장이 전환기에 중요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앞으로 재계와 정계가 자연스럽게 밀착되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
그러나 아직 신중론을 펴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번 정계개편에서 제외된 평민당이 혁신정당이 아니라 자유경제체제를 신봉하는 보수정당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보수대연합으로 볼 수 없고 이같이 어중간한 상황에서의 정경유착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대우그룹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사회당과 같은 혁신정당이 자리를 잡기전까지는 국민들에 대한 설득력도 약하고 재벌과 정치권의 밀착구조가 정착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또 거대여당이 탄생하더라도 평민당이 어떤 입장을 견지하느냐,여당내의 파벌이 어떻게 형성되느냐,경제정책을 누가 주도하느냐등 여러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는 것.
게다가 내각책임제로 가더라도 수십년동안 관에 눌려오기만 했던 기업들이 그 관행에서 하루아침에 쉽게 벗어날 수는 없으리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다.
이같은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이번 정계개편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정계개편에 재계가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는 추측에는 함구하고 있으나 지난 연말부터 재벌총수들의 회동이 잦아지는가 하면 2세 경영인들이 별도의 모임을 가지려는 기미도 보이고 있다.
또 일본의 예에 따라 특정재벌과 특정파벌이 제휴되는 현상에 대비,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는가 하면 재계의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경단련과 같은 초강력 경제단체를 새로 구성,정경 복합체를 이루기 위한 시도가 구상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앞으로 재계는 정치자금과 표를 바탕으로 당에 영향력을 미치고 당은 행정부를 장악하고 다시 행정부는 업계에 각종 인허가권과 금융정책으로 제한을 가하는 업계→당→행정부→업계의 순환적 연결고리가 본격 가동될 가능성도 많다.
일본에서 작동되고 있는지 오래인 이 순환적인 연결고리가 우리 정계와 재계에도 적용될 경우,재계는 재산세와 금융실명제,그리고 토지공개념등 자신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구하는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방준식기자>방준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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