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놀랍고 경악할 만한 일이다. 연초이래 정계개편 논의가 점차 고조되면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니 또 경천동지할 상황이 예고되기는 했지만 기절초풍할 일이 아닐 수 없다.국민들이 크게 놀란 것은 민정ㆍ민주ㆍ공화 등 3당의 통합에 의한 신당창당이라는 개편의 내용이다. 지금까지 여든 야든 큰 정당이 군소정당을 흡수하거나 색깔이 비슷한 정당끼리의 합당은 여러차례 있어왔지만 여당과 야당이 합친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사는 물론 각국에서도 유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42년에 걸쳐 우리의 헌정사상 정계개편이 국민의 뜨거운 지지와 축복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진 적이 두차례 있었다. 즉 1955년 9월 이른바 자유당의 사사오입 억지개헌 강행에 대한 반발로 모든 야당세력이 결집한 민주당의 창당과 6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역시 야권을 하나로 뭉친 신민당의 결당이다.
두 당은 7∼10개월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온갖 논란끝에 창당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물론 혁명적인 정당통합을 단행하는 데 있어 시시콜콜한 것과 기밀사항까지 밝힐 수는 없다하지만 오늘날 우리 국민의 정치적 식견이 어느정도인가. 충격과 경악의 요법만으로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이 점 통합추진의 지도자들은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3당 영수는 보수대연합의 명분을 정국안정과 민주발전,대결일변도 정치의 지양,지역주의 탈피,세계적인 화해와 개방추세에 발맞추고 장차 통일에 대비하는 범국민 정당의 창당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으로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바람직한가. 하지만 같은 보수세력이라도 생성과정과 속성이 다른 3당이 기능적 물리적 조립을 하고 여기에 각계인사를 추가시킨다고 모든 것이 원만하게 구현될 것인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어쨌거나 이러한 대연합통합의 명분의 속을 들여다보면 3당과 영수들의 의중과 계산이 맞아떨어짐을 발견할 수가 있다. 내각제 개헌,신당의 주도권 장악,집권계속집권 등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격이다.
우선 민정당은 통합에 의한 원내 절대다수세력 확보로 노대통령의 임기 3년간 안정속에 통치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더러 현정권이 말썽많은 5공의 연장이라는 이미지를 일신할 수 있으며 나아가 내각제 실현으로 사실상 계속집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정통야당에서 여당으로 급선회한다는 엄청난 부담이 있지만 선거를 치르지 않고 여권으로서 집권의 기회를 잡게된다는 점이다. 특히 김영삼 총재의 경우 지난 2년간 머리를 앓아왔던 제2야당이란 위상을 바꾸는 한편 김대중 총재와의 경쟁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 같다.
공화당은 희색만면이다. 이른바 유신체제의 후손이라는 이미지를 씻고 당의 명맥을 신당에 접목함으로써 일정한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 김종필 총재의 무게와 경륜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 1노2김이 이심전심으로 뜻을 맞춘 것은 5공청산후에 대두할 양김 퇴진론과 당내 후계그룹들의 도전을 거대신당으로 희석시켜 그들을 대해의 일엽편주,삼학군계로 만들 수 있다고 고려했을 법하다.
하지만 3당이 단순한 기능적 조립이 아닌 다른 속성과 체질이 융화되기까지의 문제와 당정의 세력배분도 큰 문제지만 통합으로 일거에 원내의석의 3분의2를 넘는 초거대여당을 만든다고 정국이 순탄하고 만사대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보수대연합을 일본의 자민당을 들먹이고 원내의 5분의4까지 오랫동안 과점했던 인도의 국민회의파를 모델로 거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만 해도 50년대중반 팽창일로의 혁신세력에 공동대처라는 인식에서 자유ㆍ민주 양당이 통합의 공감대를 이룬데다 일본 특유의 단합풍토와 체질이 순탄한 동화로 연결,오늘에 이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4당구조를 탈피하고 안정위주로 이룩한 신당이 거대한 공룡으로 출현할 것이지만 벌써부터 적지않은 문제점이 예상되고 있다.
즉 초대형여당으로서의 운영의 능률을 위해 관료적인 일사불란을 강조할 수도 있겠고 지난날 우리나라의 거대여당처럼 자만과 만심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3당의 세력 지분분쟁도 그렇고 대야당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등도 숙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통합신당이 참다운 새시대의 여당으로서 성공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몇가지 요건을 갖춰 새로운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첫째 국민을 놀라움에서 진정시키고 말과 그럴듯한 구호가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왜 통합하고 거대여당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납득시켜야 한다. 국민을 놀라움과 궁금증에서 이해와 지지로 바꾸는 진지한 노력이 신당의 생명이다.
둘째 두 김씨가 구국적 차원에서 새 여당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 이상 이것이 결코 당략과 정략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즉 두 김씨는 신당이 완성,어느정도 뿌리를 내린 뒤에는 당정의 어느 고위직도 맡지 않고 후견역을 감수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주의를 탈피하는 획기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3당 수뇌들의 살신성인의 자세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장차 번질 3당세력의 지분다툼을 막는 일정한 방안과 룰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 자민당에 8개 사단의 파벌이 열립하고 있지만 이른바 타협과 양보가 체질화되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다섯째 건전야당의 육성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초거대여당 왜소야당」은 자칫 정국불안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건전한 정치발전과 정국안정은 건전야당 육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섯째 신당에 참여할 재야 등 각계인사들이 들러리와 장식용이 아니라 누구나 능력있는 인사라면 응분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우리 정치는 그야말로 절대적으로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3당통합으로 신당구성안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당결성의 순항과 내실여부는 장래 정치운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정치도 정계개편도 모두의 주인과 감시자는 국민임을 신당추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