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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안제방/김창열 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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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안제방/김창열 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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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시절 중공에 백화제방이란 구호가 있었다. 온가지 꽃이 일제히 피어나듯,각자의 의견을 다 말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중국을 몇10년 후퇴시킨 문화혁명의 전주였다.요즘 우리형편은 백화제방이라기 보다는 백안제방인것 같다. 오만가지 대북제안이 쏟아져서,그야말로 백화요란인 것이다.

이들 백화의 큰 몫은 물론 정부의 것이요,대통령의 것이다. 연초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남북 정상회담을 필두로 해서,통신ㆍ통행ㆍ통상의 이른 바 3통협정,금강산 공동개발,60세이상 실향민의 자유왕래,팀스피리트 훈련 참가초청등이 있고,유엔총회연설을 통해 밝힌 6자회담ㆍ평화시건설이었다. 잇따라 남북 협력 기금의 조성,교역확대등 경제부처의 시책방안도 새해 청와대업무보고를 통해 차례로 밝혀지고 있다.

이것만 해도 가히 안의 백화점인데,「검토중」이란 안들은 더 요란하다. 어떤 부처는 남북을 통튼 국토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남아도는 쌀을 대여한다는 안도 나와 있다. 북의 한약재를 직교역해 들여올 계획도 있다고 한다. 드디어 이북에 송전을 한다는 안도 보도가 됐다. 송전이 안되면 중국 동북지방에 원전을 합작 건설해서,전기를 나누어 쓰리라한다. 각부처의 청와대업무보고가 진행됨을 따라서,이중 어떤것이 정부 방안으로 확인될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검토중」이라는 것만으로도 야무진 얘기들임에 틀림이 없다.

정부가 이러니,민간은 더 말할것이 없다. 교단은 교단대로,대학은 대학대로,연예단체는 연예 단체대로,교류안을 경쟁하듯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트랙터를 보내네,중국과 소련에 합작진출하네한다. 드디어는 제1야당도 나섰다. 이쯤되면 백화요란이 아닌 백화산란이다. 입 다물고 있는 것은 정작 북녘 땅이 가장 그리울 실향민단체뿐인것같아 쑥스럽다.

일이 이렇게된 데는 안의 경쟁을 부추기는 듯한 정부태도에도 까닭이 있으나,근래 동유럽사태가 불을 지른것이 사실이다. 본디 한편에 감상적인 통일지상주의가 있는터에,다른 한편에서 「자유의 승리」「희망찬 90년대」의 부질없는 통일 약관론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들뜬 안들에 비하면 국민들은 훨씬 냉정하다. 그들중 「10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사람은 29%뿐이다. 83%는 통일후의 체제는 「자유민주」라야 한다고 믿고 있다(통일원 조사). 이렇게 냉정한 눈으로 국민들은 조야간 감상과 낙관의 무성한 안들을 보고 있다.

그들이 이처럼 냉정한 것은 남북관계에 상대가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굳이 눈감지않기 때문이다. 그 상대가 어떤 상대인지는 김일성의 신년사와 그뒤의 저들 행태가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오히려 북의 변화와 개방을 더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안의 주인들은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쪽의 「콘크리트 장벽」을 들먹이며,개방할 것은 남쪽인듯이 비아냥거리고 있다. 정상회담안에 대하여는 「최고위당국자를 포함한 정당 연석회의」라는 말장난을 해보였다. 그러면서 국무총리 앞으로,또 IPU(국제의회연) 단일대표단을 구성하자고 국회의장앞으로 편지질을 시작했다. 이것은 기존의 여러갈래 남북회담마저 혼미스럽게 하는일이다. 작년 연말 판문점의 고위당국자 예비회담은 회담 명칭등을 합의하여 큰 진전이라도 있을 듯이 보도가 됐다. 그러나 이 고위당국자회담과 「최고위당국자」를 포함한 정당연석회의는 어떻게 연관되는가. 본래의 국회회담과 IPU대표단 협상은 어떤 관계인가. 진전이 있는 듯 앞이 막혀있는 체육회담ㆍ적십자회담도 혼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왜 이럴까. 가능한 설명중의 하나는 북한이 남북회담은 필요로 하나,회담의 성과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네가 개방세력인 척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척」이 국제사회나 남한에서 통용되지 않을 줄로 뻔히 알면서 그런 「척」을 하는 것은,그 「척」이 대내용임을 말해준다. 동유럽 바람막이 내부 단속용이란 뜻이다. 따라서 근래 평양에서 나오는 안은 다분히 평양을 향한 것이라 봄이 옳다. 서울의 그 많은 안이 서울을 향한것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지금까지도 북은 우리측 안에 대응해서 움직인일이 없었다. 경직된 정권의 논리가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같아서는 내부사정에 대응하느라 우리측안을 받아 들일 처지가 못될것이다. 서울의 백안이 다 부질없게 마련인 것이다. 북의 변화와 개방을 유도한다는 「자유의 바람」론도 사실은 수단없는 공론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한이 언젠가 변할것만은 틀림이 없다. 동유럽에서 보았듯,지금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수가있다. 만에 하나쯤은 루마니아 같은 물리적 변혁의 가능성도 있다. 김일성 사망이라는 생리적 해결의 가능성은 시간의 문제다. 다만 그뒤가 또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기적인 전망이 워낙에 서지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전망은 더구나 어렵다. 이점을 먼저 서울의 북한전문가,통일정책가들이 인정해야 한다.

분명 남북간에 기적은 있을수가 없다. 지나치게 낙관할것도 아니지만,비관할것도 없다.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북한을 관찰하는 일이다. 모를 것이 있으면 연구할 일이다. 첩보차원에서 발상하고,안을 착상하는 따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지금 아쉬운것은 요란한 안이 아니라,소리없는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이다. 그계획에 따라,북의 어떤 움직임에도 제때 대응하고,한반도의 긴장완화,관계개선이라는 원칙아래,시시비비하는 실무적 접근이다.

지금에 당부할 대북정책 제1조,그것은 당분간 입을 다물라는 것이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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