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의미가 없고 너무 힘들기만 하다는 생각이 가끔 우리를 엄습하는 때가 있다. 겉으로 일상의 활기를 유지하는척 해도 일단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날이 지칠때까지 계속된다. 이세상에는 그런 따위의 회의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살아가는 굳센 사람들도 많겠지만,「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등의 말이 오래전에 생겨난것을 보면 자고로 그런 증세에 시달려온 사람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지난해 연말 나는 그 익숙한 증세에 빠진채 은행에서 돈을 찾기위해 기다리면서 금융관계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데,5분쯤후에 은행을 떠날때 나의 증세는 상당히 치유되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나를 우울증에서 건져준것은 길지않은 미담기사였다.
한 은행간부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자신의 안구를 기증하면서 앞못보는 가난한 사람이 빚을 찾을 수 있도록 수술비 1천만원을 함께 남기고 갔다는 얘기가 그날 내가 읽었던 기사이다. 꾸밈없는 문장으로 써내려간 그 기사는 고인이 된 분과 그 가족들의 따뜻하고 깊은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 전체를,또는 일부를 사후에 기증하는 분들을 볼때마다 우리는 그 결단에 외경심을 품게 된다. 인간의 나약함을 뛰어넘어 인간의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난한 어떤이를 위해 눈과 수술비를 함께 남기고간 인간의 깊은 마음앞에서 우리의 우울증이란 단지 싱숭생숭한 증세에 지나지 않는다.
16일저녁 TV에서 나는 우연히 누군가가 남기고간 안구로 망막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떤분이 나에게 빛을 되찾아 주었다. 이세상에 이런 감사한일,신비로운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상상도 못했었다. 하느님과 그분께 감사드리며,나에게 빛을 주신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17일자 한국일보 사회면 「등대」에서 우리는 또 감동적인 기사를 읽게된다. 비디오가게 모녀살해범을 잡은 경관이 현상금 5백만원을 피해자가족에게 되돌려 주었다는 얘기이다. 그 경관은 『범인을 잡는것은 경찰의 책무이다. 어렵게 살아온 내가 불행을 당한 피해자가족이 어렵게 내건 현상금을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 독자가 나에게 보내준 연하장에는 『겨울은 춥지만 따뜻한 음식이 있어서 좋습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제 『인생은 고단하지만 따뜻한 얘기들이 많습니다』라고 말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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