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철학과 정치/김용구 논설위원(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철학과 정치/김용구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0.01.16 00:00
0 0

『역사는 자유의 역사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것은 이탈리아 철학자 베네데토ㆍ크로체의 말이다.우리 젊은이들에게 크로체의 이름은 미학자나 역사가로서 더 알려져있으나,그는 20세기 이탈리아철학의 최고봉이요,더구나 파시즘의 시련에 굴하지 않고 비판정신을 견지한 자유사상가로서 철학과 정치라는 맥락에서 독특한 빛을 발한다.

크로체에게는 한 벗이 있었다. 조반니ㆍ젠틸레인데 그들은 벗일뿐 아니라 철학적 협력자였다. 크로체가 <라 크리티카(비평)> 란 잡지를 낼 때,크로체는 문학ㆍ비평ㆍ역사를 주관하고 젠틸레는 철학분야를 맡았다.

철학과 정치의 관련에서 그들의 사상적 연관을 보면,크로체는 「실천의 철학」에서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의 통일을 제기하고 사상과 의지,관상생활과 활동생활,또는 사색인과 행동인의 구실을 밝혔다. 그는 생이 사상을 제약한다면,모든 사상의 형태가 언제나 역사적으로 제약되고 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철학은 일정한 역사시대에 관계되는데,역사시대는 <해결> 이 아니라 <문제> 속에 있다고 이해했다.

젠틸레는 「순수행동으로서의 정신의 일반이론」에서 내재주의를 철저히 폈다. 그에게는 객체나 대상이 있는 게 아니라,정신으로서 주체가 그 활동으로 주체로서 성립하는 한에서 정신적 실체로서 객체나 대상이 구성된다. 우리가 타자를 인식하는 이상 우리말고 따로 타자가 없고,유일한 구체적 사유는 우리의 현실적 사유라했다.

그런데 파시즘이 대두하자 젠틸레는 무솔리니진영에 가담하여 파시즘의 철학자가 되고말았다. 절대적 내재주의,정신주의의 철학자가 파시즘의 철학적대변자로 변신한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젠틸레는 무솔리니가 전복된뒤 1944년봄 피렌체에서 반파시스트 유격대에 의해 사살됐다.

사상과 행동,이론과 실천의 일치를 주장한 크로체는 파시스트반대를 선언하고 끝내 파시스트천하에서 비판정신을 견지하여 전후 이탈리아의 정신적 재생의 지주가 됐다. 암흑시대의 갖은시련에도 그가 굴하지않고 역사적 현실에 대한 투명한 사상을 견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역사에서 인간의 정신성과 본질적인 창조성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역사감각은 역사속에서 인간정신의 숭고한 기풍과함께 비애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풍긴다.

주목할 것은 정신주의적 철학정신이 오히려 역사속에서 흔들리고 차질을 빚었는데 반해 사유와 행동의 일치를 꾀하는 역사정신이 현실의 시련을 꿰뚫고 인간정신의 재생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철학과 정치의 관계에서 철학자의 마지막 목적은 철학할 자유이다. 이것은 철학자가 정치를 외면할 수 있다거나 그렇게 하였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철학자가 정치를 대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에 뛰어드는 일이기보다 정치라는 것을 지켜보고 사색하는 일이다.

명석하게 비판적 사고를 갖고 분석ㆍ판단하려면 어떤 거리를 가져야한다. 마치 자연철학자가 밤하늘의 별을 지켜보듯,철학자는 조용히 정치의 세계를 지켜보고 생각한다. 철학자인 바에는 나라나 나라의 정치보다 철학과 정치의 관계가 더 깊은 주제가 되리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