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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김창열 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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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김창열 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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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들어 신문에 실린 특집이나 연재물의 제목 몇을 옮겨적는다. 모두 새해의 정국을 전망한 내용들이다.『29년만의 열풍… 전국이 술렁』

『차기대권 겨냥 입지강화 호기』

『차기고지 선점위한 전초전』

『대권염두 정계개편 실험무대』

이것이 올상반기에 시행할 지방선거ㆍ지방자치를 보는 정치권의 시각이다. 6공후반 3년의 정치일정과 지금의 정국구조에 비추어서는 이런 진단이 당연한 것이겠으나,아무래도 걱정스런 형국인 것 같다. 그렇잖아도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함께 지방행정의 전문성ㆍ계속성ㆍ효율성이 흔들릴까 두려운 판에 「대권」 「차기」 운운하며 그 초입을 휘젓는 꼴이기 때문이다. 87년과 다름없는 대권욕의 표출,이로인한 지방자치의 지나친 정치화,지방선거의 조기과열이 염려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푸념에는 다 까닭이 있다. 꼬일대로 꼬이고,비뚤어질대로 비뚤어진 우리 지방자치사의 전철이 너무나 뚜렷한 것이다.

6ㆍ25전쟁이 한창이던 52년1월18일 부산피난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부결했다. 국회 간선으로 뽑힌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재선길을 사실상 봉쇄한 것이다. 이대통령은 2월20일,근 3년 미루어왔던 지방선거를 시행한다고 느닷없이 공고했다. 이에 대항하여 4월17일 야당은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헌정사에 오점을 남긴 부산정치파동은 이로써 절정에 오른다. 정부는 4월25일의 시ㆍ읍ㆍ면 의원,5월10일에는 도의원선거를 강행한다. 이뒤의 벌어진 일은 일지로 정리해보자.

5ㆍ18=전국 면의회 내각제 개헌반대전문

5ㆍ26=등원도중 국회의원 연행.

5ㆍ29=6개도의회 국회해산 요구 결의.

6ㆍ10=각급 지방의원 부산집결,국회해산 요구.

6ㆍ11=6백59개면의회 국회해산ㆍ총선실시 요구.

6ㆍ23=1천3백여 지방의원 국회해산요구 단식.

7ㆍ4=직선제 발췌개헌안 국회통과.

7ㆍ6=지방의원 귀향.

8ㆍ5=이승만대통령 재선.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이렇게 시작됐다. 「대권」 「차기」의 오물 세례를 먼저 받은 것이다.

이래 가지고야 지방자치가 잘 될 까닭이 없다. 이 뒤 3년 사이 지방자치운영의 티격태격으로 시ㆍ읍ㆍ면 자치단체장 1천1백68명이 사임했다. 17시 72읍 1천3백8면의 자치단체수에 견주어,그 혼란의 정도를 알 수가 있다. 이를 바로 잡는다고 지방자치법을 거듭 거듭 뜯어 고치는 중에,56년12월 2ㆍ4보안법파동 와중에 통과된 개정법은,지방의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자치단체장 선임을 임명제로 환원했다. 지방자치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이것 역시 이대통령의 4선을 노린 「대권」 「차기」의 선제포석이었다.

50년대 지방자치가 좌초된 까닭은 제도의 미비,행정의 미숙,주민의 경험부족등 여러가지가 꼽힌다. 그러나 그 시발점에서부터 있어온 정치 오염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 양상은 지방선거에의 관권개입,선거과열로 인한 타락과 씨족ㆍ문벌까지 갈라 놓은 민심분열,의회운영의 정파간 파쟁등이다. 한 마디로 하면 지방자치의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판에,중앙 정치무대의 정쟁을 곧 바로 지방무대로 투영한 것이 실패의 원인인 것이다.

지금 형편은 물론 50년대와 다르다. 아직 지방자치의 여건이 익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축으로 해서 「대권」 「차기」를 기약한다는 정치지도자들의 구상은,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 구상대로하면,관권대신 당권이 선거에 개입하게 될 것이고,그래서 선거가 과열되고,그 결과로 지방마다 4당4색의 「해방구」와 「소지역당」이 생겨나지 않을까. 그래도 지방행정이 무사할까. 이것은 바로 50년대 전철 그대로 아닌가.

흔히들 지방자치를 「민주주의의 교실」이라고 한다. 건국초기 미국의 민주주의를 고찰한 토크빌은 지방자치와 자유의 관계를 국민학교와 학문의 관계로 비유했다. 나는 이 비유를 지방자치와 정치의 관계로 원용하고 싶다. 국민학교에서 학문의 제1보가 시작된다고 할수는 있지만,그 교육과정은 어디까지나 국민학교다운 것이어야 한다. 지금 지방자치ㆍ지방선거를 놓고,「대권」 「차기」 운운하는 것은 마치 국민학교과정의 고등수학이나 같다. 교육자체를 망가뜨리기 십상이다.

모두가 소원하는 90년대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서,이번만큼은 지방자치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지나친 정치화―「대권」 「차기」 운운의 엉뚱한 의미부여는 삼가는 것이 좋다. 중간평가라는 엉뚱한 의미를 부여했던 동해와 영을 보궐선거가 어떤 꼴이 되었고,어떤 결과를 빚었는지는 익히 본대로다.

그래서,지방자치의 성공을 위해 정치가 지금 할 일은,우선 이번 지방선거에서 되도록 정치색을 빼는 일이라 생각한다. 2월 임시국회에서 있을 지방선거법 협상의 주안점도 여기 모아져야 마땅하다. 연합공천ㆍ비례대표제 등 공연한 방안으로 당리당략이나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지방자치를 그 자체로 성공시킬 수 있는 인재의 동원이 가능하고,돈이 안들고 조용한 선거제도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2월 임시국회는 지방자치 성공을 위한 대타협의 장이 되기를,가냘프나마 한가닥 기대를 걸어본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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