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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천심(조두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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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천심(조두흠칼럼)

입력
1990.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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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들자마자 정가는 정계개편 논의로 부산하다. 어느당과 어느당이 합칠것인가,어떤 당들 사이에 정책협정을 맺을 것인지 화제만발이다.자고로 정치의 요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민심이 이반하면 어느 정권,어떤 정당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제 아무리 철권정치를 하더라도 결과는 오십보백보다.

지난 12월말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맞은 비극은 무엇보다도 교훈적이다. 부인과 아들,동생은 물론 처족까지 권좌에 앉혀놓고 4반세기동안 카리스마처럼 통치해온 그는 자신이 기사회생책으로 동원한 10만명의 부쿠레슈티시 「관제데모」 때문에 오히려 축출되었다. 차우셰스쿠가 그렇게 믿고있던 군도 민심이 완전히 등을 돌리자 마침내 그를 체포,전격 처형하지 않았던가.

구랍 31일 국회청문회에 나온 전두환 전대통령은 『「6ㆍ29선언」의 경위와 배경을 들춰내는것은 결코 바람직스런 일이 아니며 훗날 회고록등을 통해 국민에게 소상히 밝히겠다』고 증언했다. 따지고 보면 「6ㆍ29선언」의 발상자가 누구였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6ㆍ29」의 원인은 유신과 5공치하의 반민주ㆍ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폭발직전에 이르른데 있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ㆍ이한열군 사망ㆍ부천서 성고문사건등은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없다. 「6ㆍ29선언」은 하루 평균 6백여발의 최루탄을 쏴야했던 5공 통치방식에 민심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채택된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시작된 소련,동구권의 변혁도 예외는 아니다. 스탈린이즘ㆍ브레즈네프이즘이 응고시킨 절대권력은 통치자 주변에 절대부패를 낳았고 국민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그런 의미에서 소련사회에서 부득이 선택된 결과이지,결코 원인이 아닌지 모른다.

부의 마력에는 체제의 차이가 없는것 같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일족은 스위스에 4억달러(2천8백억원) 상당의 금괴은닉 재산이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한것은 동독의 통치자 호네커 전의장이다. 그 일족이나 당간부 명의로 스위스 비밀구좌에 1천억마르크(40조원)를 숨긴 의혹마저 받고있다. 기네스북 1989년도판은 사상최고의 「공금횡령」 기록으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1백억달러(7조원)를 들고있다.

마르코스가 죽은뒤 이제 그 기록이 갱신될게 분명하다. 최근 미군에 투항한 파나마의 노리에가 장군은 마약밀수와 관련,거액을 챙겨 부정축재액이 자그마치 10억달러(7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는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적잖게 지켜보았다. 근 반세기 동안 북한에 족벌세습왕조를 구축한 김일성 일족의 재산과 사치상도 언젠가는 밝혀질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12ㆍ15 대타협」의 정신으로 5공ㆍ광주청문회는 일단 마무리되어 역사의 심판으로 넘겨진 것 같다. 하나 역사의 준엄한 심판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이 내린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는 없을까. 민심은 모든 비리 의혹을 쉽게 잊은것 같으면서도 길이 기억하는 법이다.

어쨌든 지금 많은 국민들은 5공 청산이 미진하지만 이때문에 생긴 경제불안ㆍ사회불안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컨센서스를 도출한듯 하다. 신문들도 90년대 들어 새정치ㆍ큰정치를 희구해야 할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90년대의 정치는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야 할것인가.

한마디로 민심이 천심이라는 정신적 바탕위에서 정치를 하면된다. 권력을 잡은측이나 도전하는 측이나 부패부정하지 않고 가진 힘을 남용하지 않는것이 그 전제조건이 아닌가 싶다. 정치ㆍ사회의 비리에 여야가 있을수야 없다. 친인척의 관리를 잘하고 지역감정을 악용하지 말것이며 순리대로 정치하면 그게 바로 새정치ㆍ큰정치가 아닌가 여겨진다.

얼마전 서울을 방문한 소련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끝까지 성공할 것인가.그가 실각할 가능성은 과연 없는가라는 테마가 화제에 올랐다. 이에대한 그들의 답변은 소련국민의 4분의3 이상이 개혁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며 소수의 기득권자들만이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고르바초프도 인간이기 때문에 정치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날이 올지 모르겠으나 지금 소련의 민심은 그를 절대로 필요로 한다는 풀이였다. 고르바초프가 1월중 외빈면담을 취소했다는 외신보도 하나로 세계의 주가가 폭락하는 판이니 의미심장한 지적이다.

어느시대 어느체제에서나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반드시 「모순」을 발견하고 「투쟁」을 일으키는 세력이라 한다. 그래서 세계는 항상 「개조」되어가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사회에는 권위와 권력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뜻밖에도 많다. 하지만 권위는 정통성있고 부패하지 않을때 스스로 생긴다. 예컨대 한 가정에서 선량한 아버지의 권위는 주먹을 휘두르지 않더라도 자연히 우러난다. 하나 권력은 어떤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복종을 강요하는 힘을 갖게한다. 그래서 권위가 따르지 않은 권력은 한낱 폭력으로 전락하게 마련인 것이다. 정치인들이야말로 평범한 이치를 깨달아야 할것이다.

역사는 흔히 되풀이 된다고들 한다. 하나 인류사를 면밀히 성찰하면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요즘 정가의 이슈가된 정계개편ㆍ연합공천 문제도 특정 보스들의 대권도전ㆍ기득권 보호 차원에서 추진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 아니할수 없다. 단순히 집권 편의만을 위해 국회의석수를 늘리고자 합종연형하는것은 지난날 우리사회가 겪었던 좋지않은 정치풍토다.

정계개편만으로 민주화가 성취되고 국민이 갑자기 잘살게 되는것도 아니리라. 항상 민심을 두려워하고 조급하지 않은 정치의 메커니즘이 고대된다는 소이다.<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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