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말 중심 언어 개혁… 방언까지 흡수/“말은 혁명의 무기”… 이질화 가속/햇내기 (김정일)등 은어도 유행분단45년의 세월을 가장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은 남북한 말과 글의 이질화라고 할 수있다. 귀순자나 망명유학생의 회견,북한사회를 소개하는 TV화면 등을 통해 접하는 북한의 언어는 생소한 외국말과 다름이 없다.
북한이 60년대부터 한자어 외래어를 정리,순수한 우리말을 살려쓰면서 평양말을 중심으로 북한만의 표준말인 문화어운동이라는 인위적 언어개혁을 실시함으로써 언어이질화현상은 심화돼왔다.
그들이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한다는 것은 85년의 남북고향방문단 교환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빨간약(머큐로크롬) 끌신(슬리퍼) 창닦개(윈도 클리너) 솔솔이(스프레이) 가슴띠(브래지어) 동강옷(투피스) 동일옷(원피스) 쪼르로기(지퍼) 처럼 외래어는 우리말로 정리돼 해방후 서구화물결속에 무분별할 만큼 외래어가 범람하는 남한과 아주 대조적이다.
반면 북한주민들은 우리가 많이 쓰는 외래어가 이질화를 심화시킨다고 말한다. 지난해 9월 임진강을 헤엄쳐 귀순한 북한군소위 김남준씨(27)도 『데이트 미팅 등의 뜻을 몰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외래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뜨락또르(트랙터) 깜빠니야(캠페인) 그루빠(그룹) 쩨마(테마) 등 러시아어의 영향이 짙은 외래어가 상당수이며 엔진 텔레비죤 와이샤쓰 카메라 등은 영어지만 그대로 쓰고 있다.
남한이 영어의 영향이 지배적이라면 북한은 러시아어의 영향 강하다는 점에서 분단으로 인한 언어의 비극성이 드러난다.
북한은 말다듬기운동의 하나로 많은 한자어휘를 순수한 우리말로 고쳤다.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긴 하지만 끌힘(인력) 일군땅(개간지) 거님길(산책로) 잊음증(건망증) 등 운치있게 다듬어진 어휘도 많다.
방언중에서 게사니(거위ㆍ평안방언) 부루(상추ㆍ 〃 ) 아바이(아저씨ㆍ함경) 망돌(맷돌ㆍ 〃 ) 등 6천여단어를 문화어로 끌어올려 남한의 표준어와 더욱 간격이 벌어지게 됐다.
그러나 언어이질화의 가장 큰 심각성은 기본적 언어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북한의 81년판 「현대조선말사전」에 의하면 언어란 「사상을 나타내며,사람들이 서로 교제를 하는데 쓰이는 중요한 수단,혁명과 건설의 힘있는 무기로 이바지한다」고 돼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삼성문화사의 89년판 「한국어대사전」을 예로들면 언어는 「음성이나 문자를 통하여 사람의 사상 감정 의지 등을 표현 전달하는 행위,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의 사회관습적인 체계」로 정의되고 있다.
「혁명과 건설의 힘있는 무기」와 「사회관습적인체계」의 차이가 이질화를 가속시키고 있는 셈이다.
주체사상과 민족어의 건설을 구현한다는 명분아래 북한은 때려부시다 까부시다 각을뜨다 등 과격하고 비속한 어휘를 인민학교 교과서를 비롯,일상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 방송이나 연설 등에서는 특유의 고저장단과 격정적이고 선동적인 어투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속담의 의미도 변조돼 「자루속에 든 송곳은 감추지 못한다」가 「미ㆍ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근성을 잘 나타낸말」이라 하여 흔히 적개심고취에 사용된다.
또 「외우다」가 북한에서는 「혼잣말처럼 말하다」,「번지다」는 넘기다의 뜻을 갖는다. 「일없다」고하는 우리의 퉁명스러운 대꾸가 북한에서는 공손하게 괜찮다는 의사를 밝히는 말로 쓰인다.
지주는 농민을 착취하는 악덕지주를 지칭하는 말로만 사용되며 선교사도 종교의 탈을 쓴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라는 뜻밖에 없다. 남한에서 흔히 쓰는 「아가씨」는 몸파는 여자의 뜻이 강해 「처녀동무」라는 말이 대신 쓰이고 있다.
지난88년 5월 북한에 다녀온 재미목사 박요한씨는 『나이든 낯선 여자를 어머니라고해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자주 듣다보니 할머니라는 표현보다는 훨씬 친근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맞춤법도 큰 차이가 나 북한은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으며 한글자모를 남한의 24자모에 ㄲ ㄸ 등 복자음과 ㅐ ㅒ 등 복모음 16자를 합해 40개로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모의 배열도 달라져 조선말사전의 맨끝자음은 ㅎ이 아니라 ㅉ으로 돼있다.
의성어 의태어 역시 「왈랑절랑하는 소방울소리」 「할아버지는 씨엉씨엉 배를 몰았다」 「어머니는 아글타글 애를 쓰며」처럼 문장에서 떼어놓으면 전혀 뜻을 알수없게 돼버렸다.
북한은 또 49년부터 교과서는 물론 신문 잡지 서적 등 일반출판물에 한글만 사용하고 있으며 조선어사전에도 한자가 전혀 없다.
북한에도 은어는 많다. 이들 은어는 대부분 사회적 고통을 언어로 해소하는 「민간비밀통신수단」이며 저항성 야유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안전원(경찰)을 「창」 「창새끼」라고 부르다가 이 말이 너무 알려지자 「삼촌」으로 바꿔 부르거나 「햇내기」(김정일) 「1호대상자」(양민을 괴롭히는 김일성이 숙청1호라는 뜻) 「김인백 동무」(김일성은 인간백정),「늑대」(당비서) 등이 최근 유행되는 은어들이다.
「철럭철럭했어」(식사했다는 뜻. 식량부족으로 죽을 쑤어 먹는 일이 많은데서 유래) 「신선주」(돈을 주고도 살수없는 인삼주) 등 생활고로 인한 은어도 다양하다.
이같은 북한언어의 2중구조가 결과적으로는 남북한 말과글의 이질화를 가중시키고 있다.<이계성기자>이계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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