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불자의 집에 갔을때,독특한 필치의 선묵이 벽에 걸린것을 보았다.효천뢰성일과후
천문만호차제개
새벽하늘에 천둥소리 한번 치더니 집집마다 대문이 하나하나 열려간다는 이 시에서,한폭의 풍경화를 보건,하나의 상징성을 읽건간에,그것은 우리에게 낯익고 아름다운 것이다.
고운의 새벽을 읊은 산문시에도 「천문만호혜시개」라는 시구가 있는 걸로 기억한다. 그의 시문에는 동ㆍ효ㆍ조라는 낱말이 많이 보이고,동방ㆍ동인ㆍ동국의 풍물을 눈에 띄게 표출하고 있다.
동쪽의 뭍,해돋이의 고장에서는 옛적부터 미명ㆍ여명ㆍ서광ㆍ조광등 신선한 아침풍정을 노래하였다.
우리말에서 <새벽> 은 동녘의 밝음이고, <날이 샌다> 는 여명이고, <새것> 은 새로움이다. 다시 말해, <새> 가 그대로 동녘이고,여명이고,새로움이다. 새> 새것> 날이> 새벽>
고대 그리스에 이런 말이 있다.
『해는 날마다 새롭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다. 지극히 짧은 말이지만,그리스어로 쓰인 새로운 것의 명쾌한 표현이다. 젊은,새로운,신선한,서투른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네오스 neos> 는 이후 서방어의 다양한 줄기의 <새로운ㆍ새것ㆍ새로움> 의 뿌리가 됐다. 새로운ㆍ새것ㆍ새로움> 네오스>
왜 해가 날마다 새롭다고 할까. 해는 저녁에 사위었다가 새벽에 다시 불붙어 새로운 힘으로 타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해는 젊고 신선하며 힘있다 한다. 고대 인도에는 이런말이 있다.
『아직도 빛을 발하지 않은 무수한 서광이 있다』
산스크리트고전 「리그베다」가 출전인데,이말은 독일 철학자 니체의 회생의 책 「서광」(1881)의 책머리에 실림으로써 유명해졌다.
만물과 자아를 새로운 눈매로 보면서 새로운 삶을 가져보려는 마음가짐 없이 나와 세계가 저절로 새로워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늘과 일광을 우러러 외경과 성실로 새로움을 기원할 때,인간의 정신성은 상징충만으로 정화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움을 지을 새날을 맞을 수 있다. 그때 새로움에 대한 의욕으로 정신이 충만하여 생활의 율동이 힘을 발하여 그 순간부터 새날이 비롯될 수 있다.
새로움은 인간정신의 내면에서 비롯하여 인식과 정감과 의욕으로 움직이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외면에 새로운 세계상을 짓게한다. 역사란 다름아닌 새로운 세계상을 짓는 수고로움이다. 이리하여 새로움이란 그 자체가 묵은것을 가리는 가장 엄숙한 구별,즉 준엄한 심판이 될것이다.
역사의 언덕에서 아침햇살이 우리에게 고지하는 새로움은 어떤 것인가. 사람따라 경우따라 새로움은 다양하게 비쳐질수 있다. 그러나 나와 너와 모두를 위해 새로이 찾고 확인하고 다짐할 목적은 <인간을 위하여> 그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시 삶의 원조건인 정신의 경신,자연의 보전,문화의 새로움으로 부연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형태의 비인간화가 정신의 황폐에서 일어나고,자연의 오염이 삶의 존립을 위태롭게하며,정신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가 새로운 문화형태를 불가불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우리는 새로운 원점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을 위하여> 새로이 하자. 인간을> 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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