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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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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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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엔 되도록 덕담을 하는 게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다. 듣기 싫은 소리나 험한 말은 안하는 게 예의다. 덕담도 덕담 나름이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빈 수레같이 요란하고 형식만 갖춰서는 큰 의미가 없다. 입에 쓴 약이 양약일 수 있듯이 고언도 덕담이 될 수가 있다는 생각으로 험담 비슷한 정담을 몇마디 늘어 놓기로 한다. ◆지난해 섣달 그믐날의 「증언」은 어떻든 역사적인 의식이었다. 「국민과 역사앞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전제로,전직 대통령은 5공시절의 그 모습을 연상시켜 가며 당당하게 치적(?)을 읽어 내려갔다. 속된 말로 증인의 증언은 혹시나 했더니 여지없이 기대를 깨고 「역시나」로 끝맺음을 하였다. 국민의 판단은 역시 현명하다. 증언이 계속되면서 TV시청률은 떨어졌다. 훌훌 털어 버리고 쉬러 가자는 심정이 절로 생겨났다. ◆증언은 그렇다고 치자. 원인제공을 증인이 했다고 강변할지 모르겠으나,여야를 가림없이 의원들의 작태는 한마디로 슬프기가 짝이 없었다. 「회의는 춤춘다」가 아니고 청문회는 떠든다로 일관하였다. 목청 돋우기,인상쓰기가 무슨 장기자랑인양 유감없이 발휘된 셈이다. 시청하는 국민은 눈과 귀를 더 크게 열어야 할텐데 오히려 막아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거듭 되었다. 더욱 눈 뜨고 못볼 광경은 증인 주변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과거의 성은을 못잊겠다는양 잔뜩 긴장한 일부 의원들의 모습이다. ◆어떻든 섣달 그믐날의 「증언」은 우리 정치 현실의 축쇄판을 보여준 것 같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우리 국민이 그 축쇄판을 냉정하게 조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전파 매체라는 높은 방청석에 올라타서 정치현실을 보았다는 것은 그런대로 뜻이 있다. ◆이 정도가 우리 정치문화의 현수준이다. 참으로 부끄럽다. 감히 정치라는 단어 뒤에 문화라는 고결한 말을 이어 댈수가 없을 만큼 딱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밝아온 90년대의 덕담은 정치문화의 향상을 기원하는 데 모아질 수밖에 없다. 제발 정치다운 정치가 이 나라에 자리 잡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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