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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창(窓)] 저출산 대책을 위한 변명

입력
2020.06.16 18:00
수정
2020.06.16 18:1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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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대책 무용론은 반감ㆍ오해의 산물

출생수 감소 너무 빨라 대응 어려운 현실

근거 취약한 무용론ㆍ폐기론 자제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통계청의 월별 출생통계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출생아 수가 약 10%씩 감소한다는 사실을 꾸준히 전하고 있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올해의 출생아 수는 27만명대를 기록할 것이다. 불과 5년 동안 새로운 세대가 5분의 3으로 줄어든 믿기 어려운 변화가 낯설지 않다는 것이 놀랍다. 출생아 수의 가파른 감소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만, 저출산 대책에 대한 평가와 태도는 부정적이며 일각에서는 무용론까지 제기된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의 일부 내용은 과거 정책에 대한 반감과 현실에 대한 오해를 반영한 것이어서 향후 합리적인 정책 수립을 위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갈래의 비판은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합계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출산 대책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출산율 변화가 저출산 대응정책 이외의 다양한 정책적ㆍ사회경제적ㆍ문화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어떤 정책의 효과를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없었을 경우 나타났을 결과를 합리적으로 추정해야 한다. 일련의 정황적인 증거에 따르면 정부의 저출산 대응정책이 없었을 경우 출산율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정부 정책이 초점을 맞추었던 유배우 출산율은 2005년 이후 높아지면서 여성 인구 축소와 결혼율 하락으로 인한 출생아 수 감소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기존 정책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고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효과가 없으므로 정책이 무용하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다른 갈래의 비판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니 저출산ㆍ고령화 추이를 미래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비하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변화 대응이 필요하고 출산율 제고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저출산 대책 포기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당면한 인구문제의 핵심은 출생아 수 감소 자체보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다. 빠른 인구변화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쉽게 적응ㆍ대응하기 어려운 급격한 불균형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출생아 수 감소 추이를 반전시키지 못해도 그 속도를 낮출 수 있다면 인구변화의 충격을 완화하고 대응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대비해야 할 미래 자체가 가변적이고 현재의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향후 출생아 수 변화에 따라 50년 후 노동인구는 현재의 절반으로 줄 수도 있고, 70%까지 유지될 수도 있다. 두 미래는 다른 대비가 요구되는 서로 다른 미래다.

정책의 효과성에 관련된 무용론과 결을 달리하는 비판은 저출산 대책이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인식하고 개인의 선택을 제약ㆍ억압하는 국가주의적인 발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실제로 정책당국자의 인식이 지금도 그러하다면 이 주장은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해하는 한 이는 다분히 과거 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에 뿌리를 둔 것이다. 현재 저출산 대책의 기본적인 비전은 출산을 어렵게 만드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회적ㆍ경제적ㆍ문화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넓은 영역에서 우리 국민의 삶의 질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향상시키고, 가정과 직장에서 성평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다양한 선호와 태도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자녀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완화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을 강압하거나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다.

기존 저출산 대책이 드러낸 문제점은 적지 않으며 이에 대한 비판은 경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ㆍ합리적 근거가 취약한 정책 무용론 혹은 폐기론이 정책 수립에 관여하는 전문가 그룹에서까지 제기되고,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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