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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은 더 이상 고래싸움의 새우가 아니다

입력
2020.06.16 04:30
수정
2020.06.16 10:0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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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이 나날이 깊어져서 넓고 깊은 태평양이 태평하지 않다. 머지않아 거대한 해일이 몰려올 수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양 강대국에 낀 우리 마음 또한 태평하지 않다. 열강 사이에 낀 한반도의 운명이 20세기 초반 한반도 상황과 오버랩되고 있다. 결코 지나친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더욱 편치 않다. 20세기 초반 한반도는 서구 열강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까지 나서서 각축을 벌인 혼란 그 자체였으며 오롯이 그들만의 무대였다.

한반도 주인으로서 우리의 운명은 그저 걱정과 우려 속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나약함 그 자체였다. 당시 위정자들은 백척간두에 선 바람 앞의 등불이었던 한반도의 운명을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눈감아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외세들과 결탁하는 비열함을 보였다. 일부 기개 있는 선비들과 잃을 것 없는 무지랭이들만이 우리의 기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강대국이 만들어가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로 산 세월이 36년이었다.

지금 다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미국이 전략 경쟁을 시작했다. 자칫 ‘신냉전’이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20세기 쓰라린 식민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로서는 어느 편에 붙어야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다시 운명의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로 우리의 처지를 폄훼하고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21세기 대한민국은 20세기 초 열강에 흔들리던 그런 나약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 전락시킬 필요는 없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힘의 판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이 강대국 간 힘의 균열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엄연한 독립국가이며 이미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성장했다. 구한말의 나약한 그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흔들리는 시대는 과거일 뿐이다. 지난 시기를 돌이켜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은 사실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도 열강들은 자신들의 국가 이익을 위해서 한반도 상황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식민지에서 막 벗어난 해방 공간에서도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들의 손 안에 있지 않았다. “미국 사람 믿지 말고, 소련 사람에게 속지 말며,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 사람 조심하라”고 한 말이 왜 나왔겠는가. 우리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한다는 의지 아니겠는가. 하물며 동아시아 기적을 일군 현재의 대한민국이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우리가 혹시 연루되지 않을까 혹은 우리가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쪽으로 강요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일방의 강요로 흔들릴 과거의 대한민국이 이젠 아니다. 한국은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글로벌 방역의 표준을 만들어가는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이다.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은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발신하는 강대한 국가의 불멸의 신호가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각 방면에서 갈등의 수위를 높여가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역내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를 자기편으로 견인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사드, 5G, EPN, G11, 4차산업혁명 등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전면전을 벌일 경우, 우리를 견인하기 위한 양국의 움직임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를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강대한 대한민국을 우리 스스로 ‘새우’로 전락시키는 꼴이다. ‘고래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는 강단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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