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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의 공존의 지혜] 장애인을 차별한 적이 정말 없나요

입력
2020.06.10 18:00
수정
2020.06.10 20:4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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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은 장애인을 그 사람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한 적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차별한 적이 전혀 없거나 별로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88%에 이른다. 그렇다면 과연 장애인들은 어떻게 느낄까?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의 3분의 1 이상이 현재 본인의 장애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는 무려 60%가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입학, 전학, 취업, 보험 계약 시에 가장 많은 차별을 경험했고, 학교생활에서는 절반 이상의 장애인이 또래 학생으로부터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상하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차별을 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잔뜩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피해의식에 빠진 것일까?

질문을 달리하면 차별을 한 사람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차별하는지 물으니 비장애인 응답자 중 66%가 우리 사회의 장애인 차별이 심하다고 응답했다. 나는 차별을 한 적이 없지만 불특정 다수인 사회는 차별을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응답이 나오는 이유는 ‘차별’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부정적 의미가 강하기도 하고, 사회에서의 장애인 차별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규범적, 도덕적으로 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별이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실제 행동과는 전혀 관계없는 생각에 근거해서 열등성을 부여하거나, 자의적(恣意的)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하며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기준만으로, 대부분 실제 사실과는 무관한 것을 기준으로 나보다 열등하게 여겨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대상이 누구든지 불평등한 대우를 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내 행동이 차별인지 아닌지를 보려면 먼저 내가 가진 기준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오래전 미국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비장애인 실험 참가자에게 서 있는 성인 남성, 어린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성인 남성에게 각각 특정 장소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도록 했고, 실험 참가자들의 말투와 어조 등을 분석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성인 남성에게 길을 안내할 때, 대다수의 실험참가자들은 성인 남성에게 사용한 단어나 어조가 아니라 어린이에게 말했던 것처럼 높은 어조와 반복적인 단어, 짧은 문장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을 보면, 그 사람의 나이나 장애의 종류와 관계 없이 어린아이처럼 여기거나 나보다 부족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장애의 확장 효과(The Spread Effect)라고 부른다. 한 사람의 장애가 당연히 다른 감각이나 능력, 성격적 특성 등 그 사람 전체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은 보지 못하므로 청각에도 문제가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시각장애인에게 말할 때 큰소리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쳐다보고 구경했던 사람들도 내가 화상으로 인한 외모의 손상 때문에 당연히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할 것이며, 지적 능력도 부족할 것이라고 여겨져서, 내게 물어보거나 말을 걸지 않고, 자기들끼리 나를 구경하며 ‘얘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추측하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대로 두면, 다르게 대하려고 나쁘게 의도하지 않았어도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이다.

장애는 신체나 정신에 나타난 한 가지 특징이다. 손상이 일어난 곳은 부분이지 그 사람 전부가 아니다. 이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애인이 가진 능력에 대해 넘겨짚는 실수를 하곤 한다. 몇 년 전 어느 사진전의 테이프 커팅식에 초대된 적이 있다. 취재기자도 많았고, 높으신 분들 사이에 내가 함께 서게 되었는데, 도우미분이 왼쪽부터 테이프를 자를 가위를 나눠 주는 데 나는 안주고 지나갔고 결국 나는 가위도 갖지 못한 채로 테이프 커팅식에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황당한 일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최 측에서 전날 회의를 한 결과 내가 손이 불편하니 가위질을 못할 것이므로 가위를 주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 아예 주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내게 가위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지 한 번만 물어보면 될 것을, 불필요한 회의를 통해 결국 넘겨짚기를 했고 더 큰 실례를 한 셈이 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2년이 지났다. 장애인 차별 사례들을 들어보면 내 이야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억울하고 답답한 이야기들이 있다. 어쩌면 그 억울한 차별의 시작은 장애를 한 가지 특징으로 보지 못하고 전부라고 여기는 생각에서 시작 되었을지 모르겠다. 다시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장애인을 내 기준으로 장애인의 능력을 판단하여 다르게 대한 적은 없나요?”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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