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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Wide] SF소설에 빠졌던 소년의 ‘인류생존’을 향한 꿈, 현실이 되다

입력
2020.06.10 13:00
수정
2020.06.10 16:5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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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는 왜 우주선을 쏘았나>

미국의 민간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지난 30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세계 최초의 민간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하자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민간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지난 30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세계 최초의 민간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하자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5월 31일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이 국제우주정거장과의 도킹에 성공했다. 언론과 대중은 이번 발사가 미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이 퇴역한 지 9년 만에 미국인 우주비행사가 미국 땅에서 미국산 로켓을 타고 우주궤도에 오른 첫 사례(그 동안은 러시아 우주선 사용)이고 민간우주산업이 이제 단순화물운송에서 전문가를 동원한 탐사분야로까지 확장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시야로 일론 머스크같이 다재다능할 뿐 아니라 얼핏 문어발식으로 벌려 놓은 듯한 사업들 곳곳에 뚜렷한 자기비전을 일관되게 투영해온 인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일론 머스크를 마크 주커버그나 빌 게이츠처럼 IT 공룡기업의 또 다른 창업주 정도로 바라봐서는 그 진면목을 꿰뚫어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가 바라는 것은 단지 돈벌이만이 아니다. 지구상 권력지형도의 지분을 챙기는 데 안주하지도 않는다.

입지전적 성공을 거둔 사업가들은 누구나 나름의 확고한 비전을 지녔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전의 방향과 범위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얼마나 드넓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지, 그리고 그 비전이 당사자만이 아니라 인류사회 전체에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일론 머스크는 비즈니스 업계에서 실로 천연기념물 같은 희귀종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세계최대 전기차 제조기업 '테슬라'의 미 캘리포니아주 소재 생산공장에 차량이 들어차 있다. AP=연합뉴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세계최대 전기차 제조기업 '테슬라'의 미 캘리포니아주 소재 생산공장에 차량이 들어차 있다. AP=연합뉴스

현직 대통령도 ‘디스’ 독특한 사업 철학

일론 머스크의 사업 분야는 어느덧 IT 분야의 굴뚝업종이자 캐시카우라 해도 과언이 아닌 ‘테슬라(전기자동차)’와 ‘솔라시티(태양광에너지)’에서부터 손익분기점이 본격 시험대에 오른 ‘스페이스X(우주운송)’와 ‘보링컴퍼니(대도심 지하터널 고속도로망)’ 그리고 아직 사업성은 둘째치고 기술검증이 많이 남은 ‘하이퍼루프(초고속 대륙횡단 진공터널)’와 ‘뉴럴링크(대뇌에 전자칩을 삽입해 컴퓨터와 직접 소통하는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일견 다채로워 보인다. 그러나 남아공 출신으로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이 벤처기업가의 개인 프로파일을 조금만 더 찬찬히 살펴본다면 그것들이 단지 새로운 산업 트렌드에 발 빠르게 영합하려 했거나 CEO의 변덕스런 주관이 반영된 결과 생겨난 뒤죽박죽 잡탕 조합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일론 머스크의 비전을 이해하자면 사업가 이전에 그가 어떤 인간이 되길 원했는지 참고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가 어린 시절 탐독했던 과학소설 가운데 지금도 감명 깊은 작품으로 꼽는 것이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장편연작 ‘파운데이션 시리즈’다. 이것은 오랜 번영을 누려온 은하제국이 누적된 내부모순으로 무너져 무려 3만 년 간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견되자, 그 공백기를 최소화하여 인류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역사심리학자 해리 셸던과 그의 추종자들의 일대기다. 보통 사람들은 SF가 제시하는 비전을 그저 황당한 꿈으로 치부한다. 반면 일론 머스크에게 해리 셸던은 그냥 소설 캐릭터가 아니라 자신이 닮고 싶은 목표였다. 그는 떼돈을 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으며 온 인생을 바칠 만한 궁극의 비전이 필요했다.

21세기가 행여 암흑시대의 시발점이 되지 않도록 일론 머스크가 줄곧 관심을 쏟아온 분야는 환경보호와 우주개발의 민간산업화를 통한 화성식민지 개발이다. 그의 이런 관심사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인터넷 결제회사 페이팔의 지분 매각대금 1억6,500만 달러 중 1억 달러나 스페이스X 창업에 투자한 일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설립 당시만 해도 민간우주사업은 사업성이 불투명해 보였으니까.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에 반발하여 그간 맡고 있던 대통령 자문위원회 두 곳에서 공개 사임한 행동 또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당장 사업상 손해 보는 일도 아닌데 자기 소신을 위해 현직 대통령을 ‘디스’하는 기업가라니, 쉽게 연상이 되는가?

일론 머스크가 추진한 민간유인우주선 발사 성공은 화성에 인류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그의 꿈과도 맞닿아 있다. 사진은 지난 30일 미 항공우주국 우주비행사 더글러스 헐리와 로버트 벤킨이 탑승한 스페이스X의 팰컨9호가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모습. AP=뉴시스
일론 머스크가 추진한 민간유인우주선 발사 성공은 화성에 인류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그의 꿈과도 맞닿아 있다. 사진은 지난 30일 미 항공우주국 우주비행사 더글러스 헐리와 로버트 벤킨이 탑승한 스페이스X의 팰컨9호가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모습. AP=뉴시스

전기차, 우주개발…‘인류를 지켜라’ 원대한 꿈

위의 사례들은 사업과 명분을 한데 연계시키는 일론 머스크의 비즈니스철학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그의 주력사업인 전기차와 태양에너지서비스는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방지에 결과적으로 기여한다. 2014년 그가 전기차 속도개선에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관심을 쏟게 할 수만 있다면 테슬라 기술특허를 얼마든지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때, 이를 두고 단지 기술선도업체의 이슈마케팅이라고만 폄하할 수 있을까.

스페이스X의 궁극 목적 또한 그저 미항공우주국의 우산 아래 안정적 수입만 챙기는 것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를 향한 시선을 끝까지 따라가면 화성과 만난다. 스페이스X는 우주화물운송사업에서 유인탐사서비스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항공우주국과 공동 추진하려는 아르테미스 계획(달 탐사)을 징검다리 삼아 마침내 2040년대가 되면 화성에 상주 식민지를 건설하려 한다. 터무니없다고 냉소하기 전에 일론 머스크가 추진해온 벤처사업들이 그간 추진속도의 완급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거의 대부분 사업화되었거나 실행준비단계임을 감안하라. 그렇다면 화성에 소수의 군인출신 우주비행사들이 강대국들 간의 국격 경쟁을 위해 일회성으로 다녀오는 대신 다수의 민간인들이 아예 두고두고 살 작정으로 이주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가 이처럼 원대한 꿈을 꾸는 이유는 간단 명쾌하다. 인류의 멸종확률을 줄이자면 사람들이 태양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SF에는 내행성계와 외행성계 사람들이 반목하거나 협조하며 살아가는 근미래 사회가 곧잘 나온다). 코로나19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지독한 악성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핵전쟁과 환경오염 그리고 심지어 소행성과의 충돌로 지구상 인류가 멸종의 길을 걷더라도 어딘가 다른 곳에서는 인간들이 꾸준히 번성하도록 돕겠다는 것이 일론 머스크의 야심이다. 이러한 포부를 비웃는 이들에게 보란 듯이 그는 우주탐사를 경제성 있는 비즈니스 산업으로 탈바꿈시켜 왔다.

일론 머스크의 다음 목표는 인공지능(AI)과 인간지능의 공존이다. 그는 AI가 인간을 압도하기 전에 AI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며 인간 스스로 기계와 결합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론 머스크의 다음 목표는 인공지능(AI)과 인간지능의 공존이다. 그는 AI가 인간을 압도하기 전에 AI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며 인간 스스로 기계와 결합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차기작은 ‘AI와 인간 공존’ 뇌공학 프로젝트

마지막으로 ‘뉴럴링크’와 ‘오픈AI(안전한 인공지능 개발을 돕는 비영리연구소)’ 역시 일론 머스크가 인류를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터미네이터’류의 영화들은 인공지능에게 휘둘리는 끔찍한 미래로 겁을 준다. 이에 대한 일론 머스크의 해결책은 우선 발상의 전환부터 요한다. 부싯돌을 내던지고 굴 속으로 되돌아갈 게 아니라면 걱정은 때려치우고 정면 대응하자는 거니까.

그는 2017년 열린 ‘세계정부서밋(World Government Summit)’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앞서게 될 특이점 시대가 오기 전에 인간 스스로가 기계와 유기적으로 결합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뇌에 삽입된 전자칩과 외부 컴퓨터를 연결해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갖고 놀 수 있다면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이 사업화된 실체가 바로 뉴럴링크이며, 1차적으로는 사지마비와 척추ㆍ뇌ㆍ시각ㆍ후각 등이 손상된 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전망이다. 사실 빅 브라더 인공지능보다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공포의 대상은 지금도 우리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빼앗고 있는 얌전한(?) 인공지능이다. 이 때문에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CEO를 맡은 뉴럴링크뿐 아니라 딥마인드를 포함하여 다양한 인공지능개발업체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로봇세(또는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더라도 존속 가능한 시장의 수요공급을 고민한다. 2019년 그가 2020년 미국 대선의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섰던 앤드류 양(Andrew Yang)을 공개 지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양의 핵심공약은 기술자동화와 인공지능으로 줄어든 실업문제의 근본해결을 위해 성인 모두에게 월 120만원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친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모국인 남아공의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자신의 꿈을 기업의 비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 일론 머스크의 대장정은 오로지 사업성만을 투자 제1순위로 꼽는 일반기업가들의 예측가능한 삶과 확연히 차별화된다.

p.s.) 그는 자사 로켓에 테슬라 스포츠카 로드스타를 싣고 그 안에 마네킹 ‘스타맨’을 앉혀 놓거나 우주비행사들이 테슬라 전기차를 타고 우주선 발사장소로 오게 하고 유인우주선에 유명 팝아트 화가의 작품을 싣는 등 이슈마케팅에도 재주꾼이다.

고장원 과학칼럼니스트ㆍSF작가

고 작가는 과학기술과 인류사회의 미래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SF란 무엇인가?’ ‘SF의 법칙’ ‘특이점 시대의 인간과 인공지능’ 등 SF와 과학 관련 저서를 다수 펴냈고 여러 매체에 과학 칼럼을 연재해왔다. 서울벤처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제일기획 PD을 거쳐 SKㆍCJ그룹에서 IT기반 콘텐츠 사업기획을 담당한 바 있다.

※Deep&Wide는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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