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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에 ‘n번방’까지 성착취 연대기… “더 이상 이런 연극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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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에 ‘n번방’까지 성착취 연대기… “더 이상 이런 연극 없기를”

입력
2020.06.05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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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공주들’은 주인공 김공주의 삶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부터 최근의 n번방 사건에 이르기까지 성착취 역사를 되짚는다. 극단 신세계ㆍIRO Company 제공
연극 ‘공주들’은 주인공 김공주의 삶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부터 최근의 n번방 사건에 이르기까지 성착취 역사를 되짚는다. 극단 신세계ㆍIRO Company 제공

“물어보고 싶었어. 내 엄마한테, 엄마의 엄마한테,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한테. 아빠한테 물어보고 싶었어. 아빠의 아빠한테, 아빠의 아빠의 아빠의 아빠한테. 우리 언제부터 이랬는지.”

n번방 사건 이전에 또 다른 n번방들이 있었다. 위안부만 해도 엄마의 엄마의 엄마, 아빠의 아빠의 아빠로 거슬러 일본군 위안부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도 있었다. 말하자면 아날로그 시대의 n번방들이었다.

9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에 오르는 연극 ‘공주들’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 번은 지켜볼 만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김공주. 일본군 위안부에서 한국군 위안부로, 다시 미군 위안부를 거쳐 성매매 집결지까지 흘러든다. 1970~80년대 기생 관광, 베트남전은 물론 최근 여론의 공분을 샀던 버닝썬 사건, n번방 사건까지 지난 한 세기 성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건이 다뤄진다. 크게는 나라를 위해, 작게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희생됐던 수많은 공주들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렇다면 성을 산 사람은 누구인가.

김수정 연출은 “2018년 미투 운동 때에서야 나 또한 예전에 그런 피해를 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며 “이 문제의 기원을 찾다 보니 지난 100년간 구축된 ‘성매매 체제’를 살펴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대 자체가 꽤 수위가 높다. 극장엔 문이 3개 있는데, 김공주의 입, 성기, 항문을 상징한다. 극장 자체가 김공주의 몸이요, 이 문을 드나드는 관객, 배우는 김공주를 드나드는 이들이 된다. 김 연출은 “김공주라는 무대 위 인물이, 이미 지난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공주들’에서 ‘공주’는 동화 속 공주(公主)가 아니라 구멍 공(孔) 주인 주(主), 즉 ‘구멍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극단 신세계ㆍIRO Company 제공
‘공주들’에서 ‘공주’는 동화 속 공주(公主)가 아니라 구멍 공(孔) 주인 주(主), 즉 ‘구멍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극단 신세계ㆍIRO Company 제공

극은 사실적이다. 버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한 문옥주씨, 일본군 위안부에서 미군 위안부로 살아오며 아들을 베트남에 파병 보낸 김순악씨, 미군 위안부에서 여성 운동가가 된 김연자씨, 미군 위안부 피해자 김정자씨의 증언을 토대로 삼았다. 배우 12명과 스태프는 그들의 삶을 열심히 공부한 뒤 각자 장면을 구성하고 그중 한 장면을 선택, 각색하는 방식으로 극을 함께 만들었다. 2018, 2019년 이미 두 차례 무대에 올랐으나, 당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반영하기에 내용과 구성은 늘 바뀐다.

당장 올해 공연만 해도 n번방 사건을 새로 포함시켰다. 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 사이의 갈등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배우와 스태프가 모여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김 연출은 “이용수 할머니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지만, 정의연의 활동도 존중받아야 한다”면서 “한 개인이 전체를 포괄하거나 대변할 수는 없는데,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집단화해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공주들’에서도 김공주를 비롯, 등장인물에 대한 개인적 연민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의성에 더해 작품성까지 인정받아 ‘공주들’은 지난해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 관객평가단 인기상, 신인연기자상(김공주 역 양정윤) 등을 받았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성매매 체제는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성매매특별법 이후 집창촌은 사라졌다지만, 다른 성매매 통로들은 여전하다. 김 연출은 “국가가 성구매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성매매를 용인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연극의 궁극적인 목표는 “더 이상 이야기가 새롭게 추가되지 않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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