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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문정인“동맹도 전략동반자도 수단일 뿐… 美中외교는 국익 최우선해야”

입력
2020.06.04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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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G7 참여와 관련해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지만 중국을 배제하며 적대시하는 국제협력에 참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G7 참여와 관련해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지만 중국을 배제하며 적대시하는 국제협력에 참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트럼프 미국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전방위적인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책임을 제기하며 시작된 미국의 중국 압박은 홍콩보안법 논란으로 전선이 넓어졌다. 미국은 가까스로 타협한 미중 무역 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한 것도 모자라 한국 등 우방국에 경제번영네트워크(EPN)나 군사적 연대에 동참하라고 요구한다.

미중 갈등은 우리 외교의 해묵은 숙제다. 안보 현안인 북핵 해결과도 무관치 않다. 1953년 상호방위조약으로 출발한 한미 동맹은 근 70년 동안 폭과 깊이를 더해왔다. 1992년 수교 이후 경제를 중심으로 공고해진 한중 관계는 이제 우리 운명의 일부다. G2 강대국과 돈독한 관계는 축복이지만 사드 갈등에서 경험했듯 G2의 이해가 엇갈릴 경우 늘 선택과 줄서기를 강요 받는다. 치우칠 경우 감당해야 할 피해가 만만치 않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69)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를 4일 서울 광화문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군축 리더십 네트워크(APLN)’ 사무실에서 만나 미중 외교, 남북 관계 전망에 대해 들었다. 문 교수는 국제 NGO인 APLN 부의장 겸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무역 합의로 수습되는 것 같던 미중 갈등이 6개월만에 재연되고 있다. 이번 갈등의 배경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다. 진원지인 중국이 투명성을 결여해 세계적인 전염병 확산을 c초래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홍콩보안법 문제가 대두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 때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홍콩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이번 조치는 당시 합의를 파기하는 것으로 본다.

그 저변에는 미중 간 전략경쟁, 패권경쟁이 있다. 전략경쟁이란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인정하면서 남중국해 등에서 전략적으로 경쟁하는 상황이고, 패권경쟁은 지구적 차원의 우월적 지위 다툼인데, 지금 미중 경쟁은 두 가지가 혼재해 있다. 미국은 시진핑 주석의 정책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한 뒤 다음 단계로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하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20세기 초 영국이 부상하는 독일에 품었던 의심과 비슷하다. 중국은 소련에 했던 것처럼 미국이 중국 공산당을 흔들어 중국에 자국이 원하는 정치이데올로기를 심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갈등의 배경에는 11월 미국 대선도 있다. 미국은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중국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 대선을 앞두고 마치 중국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경쟁하는 듯 보인다. 홍콩보안법 철폐 등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사태 수습이 어렵다. 중국의 태도가 그렇게 바뀔 가능성이 없으니 대선 이후에도 갈등이 계속될 것이다.”

-인권 문제인 홍콩보안법에 우리 외교 당국은 조심스러운 태도다. 중국을 의식한 외교적 모호함이 낯설지 않지만 이번 사안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우리는 중국과 수교 당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 데다, 아직 홍콩보안법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실제 이 법규가 이행되면서 어떤 인권 침해가 발생할지 두고 볼 필요도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나라마다 보안 관련법이 있는데다 홍콩이 특별행정구역이기는 해도 중국의 일부이고 중국의 주권이 미친다고 보기 때문에 중국은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른 내정불간섭 원칙을 주장한다.

‘우물이 강물을 범람시킬 수 없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홍콩이 무너지면 티베트, 신장 위구르 문제가 불거져 다민족 국가인 중국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중국의 위기감도 없지 않다. 우리로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고 홍콩 문제 역시 중국 내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실제 이 법이 시행 과정에서 국제규범을 위반하는지 지켜 보며 비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을에 열릴 G7 정상회의에 한국 등 몇 나라를 초대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이 어떤 형태의 G7 개편을 염두에 둔 것인가.

“일단은 옵서버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이지 G7 다른 회원국 정상들과 충분한 사전협의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다른 나라들이 불쾌할 가능성이 많다. 지난해 파리 G7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의 돌출 행동을 다른 회원국들이 곱게 보지 않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뭉쳐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역시 대선을 염두에 둔 외교적 행보로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G7의 응집력이 약해진 상태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나가면 G7이 무너질 것이고 그때는 참여도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G7 확대가 반중국 연대를 목적으로 할 경우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인 우리로서는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확대된 G7 회의 참여의 득실은 무엇인가.

“국제협의체 중 거의 유일하게 우리가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G7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이 국가 모임에 들어감으로써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제표준모델이 된 한국의 방역 등 우리의 소프트파워 역량을 널리 알리는 계기도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대면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 포위 의도가 분명해진다면 그때는 참여 의미가 퇴색된다.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다.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지만 중국을 배제하며 적대시하는 국제협력에 참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된 시진핑 주석의 방한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외교적 숙제다. 지혜로운 미중 외교를 위한 최우선의 원칙은 무엇인가.

“국익의 보존이다. 한미 동맹도, 중국과 전략적 동반 관계도 모두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 어떤 가치보다도, 생존을 지키고 번영을 가져오며 국격을 높이는 국익을 우선해 판단해야 한다. 70년이 다 돼가는 한미 동맹은 북한의 남침을 막고 평화와 번영,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동력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한미 동맹이 앞으로도 유익할지는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 반중 전선에 참여해서 오는 부정적 영향은 무엇일지, 얻을 이익은 무엇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 상황은 미중 신냉전 구조의 최전선에 선다는 것인데 그것을 국민이 동의할지 의문이다.

중국이 가진 수많은 지대지탄도미사일은 전부 한반도를 사정권으로 한다. 미국은 대중 견제가 정책의 문제지만 우리는 실존의 문제다. 중국과 등을 지면 중국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 증강을 지원할 것이고 그러면 핵문제는 더 풀기 어려워진다. 중국과 무역량은 우리 전체 무역량의 24%로 가치 사슬로 통합된 상태다. 그것이 끊어질 때 파장도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공산당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일을 뒤바꿀 수 있는 나라라는 것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북미, 남북 관계가 소강 상태다. 비핵화 회담이나 남북 대화에 다시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까.

“3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우선 악화된 현 상태가 유지될 수 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핵실험 등 미국이 군사적 보복을 부를 정도의 도발은 자제하면서 중단거리 미사일 실험을 계속해 긴장을 고조시켜 협상력을 높이려 할 수 있다. 그 경우 남북관계는 동결되고 미국도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선 이후까지 지켜보자는 전략이다.

핵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며 ICBM 발사 등을 감행하는 심각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이 보복 타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선 국면에서 전쟁은 현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워싱턴의 일부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런 대응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세 번째는 낙관론인데 가을에 G7이 열리기 전에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만들어지고, 그 내용을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하면서 대선 전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는 시나리오다.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미국 대선 후 대북 정책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분에 대한 확신을 갖고 북핵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듯하다. 하지만 미국의 현 국가안보회의(NSC)나 국무부에서는 그에 대해 회의적이다. 정권이 교체되면 미국 대통령의 생각도 NSC도 같아진다. 조 바이든은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 용의가 없다고 이미 밝힌 상태다. 백악관은 오바마 정부 시절 ‘전략적 인내’에 참여했던 멤버들이 지금도 그대로다. 다만 바이든이 민주당 연립 후보라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정권 인수 과정에서 버니 샌더스 등 대화파 캠프 인물들이 참여한다면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다. 우리가 얼마나 북한과 협상을 미국에 강하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렸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가능했던 것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강경한 대북 정책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들어 남북 관계라도 속도를 내자고 하지만 성과가 없다.

“방향은 맞지만 북한이 호응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북한은 판문점선언, 평양선언 해놓고 이행한 게 뭐 있냐, 기대하지 않는다는 섭섭함이 있는 것 같다. 지난해 북미 하노이 회담 때 영변 핵 폐기할 테니 유엔 안보리 제재 일부를 풀어달라는 요구를 미국이 거부했는데, 영변 카드는 애초 평양선언에도 있었으니 문 대통령의 미국 설득이 먹히지 않는다는 판단도 한 것이다. 오늘 김여정 담화에도 나왔듯 탈북자들이 전단 보내고 여전히 적대적인데 남북 협력이 무슨 의미 있냐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남북 모두 활동이 어려운 것도 제약이다.

문재인 정부가 실기한 부분도 있다. 2018년 9월 평양선언 후부터 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회담 때까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이행 조치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어느 정도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거의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북한의 태도를 바꾸려면 남북 관계를 개선할 더 적극적인 법제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단 살포처럼 남북군사합의에 반하는 비무장지대 적대 행위도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제도적으로 중단시켜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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