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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바르셀로나에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

입력
2020.05.29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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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게티이미지뱅크
스페인 바르셀로나. ©게티이미지뱅크

도무지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옆집 할머니는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올라, 부에노스 디아스” 조심스레 아침 인사를 건넸지만 너는 또 어디에서 온 이방인이냐는 경계의 눈빛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위층 어딘가에서 또 멈춰 버린 엘리베이터. 나 역시 커다란 짐을 들고 나선 터라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괜스레 죄인이라도 된 양 미안했다. 3층이면 지상을 0층으로 치는 유럽에서는 우리나라 4층에 해당하니, 관절이 퉁퉁 부어 지팡이를 짚은 노인에게도. 큰 짐을 옮겨야 하는 나에게도 만만치가 않은 높이였다.

이 숙소에 체크인을 한 날부터 주인이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던 바로 그 엘리베이터 문제였다. 호출 버튼을 누르고 층수만 누르면 끝인 우리의 엘리베이터와 달리, 바르셀로나에는 타고 내릴 때마다 바깥 문을 열었다가 닫고, 또 안쪽 문도 열고 닫아야 작동하는 옛날식 엘리베이터가 많다. 내릴 때 이중 문을 꼭 닫아 주는 습관이 안 붙은 여행자들은 그냥 떠나기가 일쑤였는데, 그렇게 멈추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건물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개인이 주거용 건물에서 운영하는 숙소가 늘어나면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다툴 거리도 많아졌다. 게다가 그것이 매일의 불편을 주거나 매달의 월세를 올리는 거라면, 관광객 증가는 그저 국가적인 통계가 아니라 내 일상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옛날식 엘리베이터. ©게티이미지뱅크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옛날식 엘리베이터. ©게티이미지뱅크

우리에게는 골동품처럼 느껴지는 옛날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바르셀로나의 건축물들은 100년 넘게 지켜온 도시계획의 유산이었다. 1800년대 중반 섬유산업으로 도시가 부흥하면서 몰려드는 인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구시가를 둘러싼 성곽을 무너트리고 외곽으로 신시가지를 넓힐 계획을 세운다. 그 밑그림을 그린 이가 바로 가우디보다 한 세대 앞선 천재 토목기사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à)였다. 복잡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전염병이 창궐하던 구시가와는 달리, 한 변이 133.3m인 블록마다 하나씩 네모난 도넛 모양의 집합 건축물을 세운 계획도시였다. 지금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가운데가 빈 ㅁ자 모양의 블록 600여개가 차곡차곡 들어서 있는데, 이 블록을 스페인어로는 사과라는 뜻의 만사나(Manzana)라고 부른다.

도시 평면의 기본 단위를 동일한 형태로 만들며 미관상 통일감도 챙겼지만, 사실 세르다가 제안한 만사나의 핵심 가치는 ‘공유’였다. 도로와 닿은 가장자리로는 6층이 넘지 않게 건물을 짓고 가운데 공간은 비워서 정원이나 녹지를 만든 덕분에, 건물 어디에 살든 채광이나 환기 걱정은 끝.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통하는 열린 공간에서 살게 하자는 구상이었다. 대신 어깨를 맞대고 있는 건물 주민들이 지켜야 할 것도 있었다. 건물로 둘러싸인 내부 정원은 모두의 것이니 폐를 끼치지 않게 조심한다든가, 엘리베이터의 문을 잘 닫아 줄 거라 서로 믿고 기대하는 것들이 바르셀로나에서 누군가의 이웃으로 사는 최소한의 규범이 되었다.

어쩌면 함께 살아 간다는 것은 나 때문에 다른 이에게 피해는 가지 않을까 한번쯤 뒤돌아 확인해 보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닐까.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로도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수 있는 코로나19로, 나의 무신경함이 자칫 타인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힘들다 호소하던 도시에서도 요즘엔 그 한 명의 관광객이 아쉬워 한숨 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나 언젠가 다시 여행이 시작되는 날, 관광객과 현지인 서로가 참 그리웠다 반가운 인사를 전하려면 되짚어 돌아봐야 할 것이 많다. 어느 광고의 문구인 ‘현지인처럼 살아 보는 거야’는 ‘현지인처럼 책임지는 거야’로 이제 바뀌어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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