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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사할 때 다짐은 왜 늘 실패할까

입력
2020.05.21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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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저는 며칠 후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씩 이삿짐을 챙기고 있는 중입니다. 보통은 직업이나 직장이 바뀐다고 해서 꼭 이사를 하지는 않지만 저희 신부(神父)들은 일하는 장소와 숙소가 대부분 함께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이 바뀌거나 장소가 바뀌면 이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간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주기적으로 인사이동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주 이사를 하는 편입니다.

저는 이사할 때마다 불필요한 짐을 늘리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짐을 늘리지 않으려는 것은 자주 이사를 다녀 이력이 날만도 하건만 짐을 싸고 다시 풀어서 정리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고 귀찮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제가 적극적으로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은 근본적으로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제조, 사용, 처분하는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자연에 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에 제가 사용하는 물품의 수라도 줄여 조금이나마 환경에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요즘 일시적이긴 해도 코로나 사태로 인간이 멈추면서 자연이 살아나고 있는 세계적인 현상을 보며 인간이 자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어쨌거나 제가 4년 전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고 나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챙겨 왔건만 이삿짐을 싸다 보니 이번에도 불필요한 물건들이 또 생겼습니다. 물론 필요한 물건과 불필요한 물건의 차이는 개인에 따라 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다른 이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나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일수 있습니다. 또한 조사에 의하면 중진국에서는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품은 평균 300가지이지만 선진국에서는 평균 800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보통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필요한 물품이 더 많아지게 되는 것은 개인용 컴퓨터처럼 중진국에서는 거의 사치품인 것이 선진국에서는 필수품처럼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풍요로움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의 불편함도 참지 못하는 생활자세 때문인 듯 합니다. 우리 나라만 해도 불과 십여 년 전, 짧게는 몇 년 전까지도 불편하긴 해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이웃이나 지인에게 빌려서 사용했던 것들도 “귀찮게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라는 생각으로 딱 한번만 사용 할 물품도 쉽게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품”도 많아지고 그와 비례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도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거의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물건의 가지 수를 줄이려면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건만 여러 가지 핑계로 잘 되지 않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나이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워낙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지금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시대를 잠시나마 경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편리함에 익숙해져 버리고 불편함을 못 견뎌 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불편함을 회피하면 누군가가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 하나 편하자고 질서나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나 자신도 처벌을 받게 되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무고한 사람이 생깁니다. 환경문제도 결국 우리 인간이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불편함마저 회피하고 편리함만을 추구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양심에 따라 산다는 것,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책임져야 할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양상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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