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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讀古典] 부모 노릇 하기

입력
2020.05.04 18: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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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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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날, 곧 어버이날, 그리고 한 주 걸러 스승의 날이다. 흔히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오히려 교육의 달이 아닌가 싶다. 강단에 선 선생님이나 집에서 함께 지내는 부모나 아이들에게는 모두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는가. 근자에 ‘EBS부모특강’이라는 일련의 강좌를 보았는데 그 중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조세핀 킴 교수의 강의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에 4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독재자형’, ‘방임형’, ‘허용형’, ‘권위형’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이상적인 것은 권위형 양육 방식이라고 한다. 이런 양육 방식을 가진 가정은 부모 자식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대화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높은 자존감과 좋은 사회성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또한 “부모는 아이의 친구가 아니라 부모다워야 한다”는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여러모로 반성을 하게 되는 강의였다.

현대 교육학 이론처럼 정밀하지는 않지만 고전에도 부모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은 많이 담겨있다. ‘가훈’이 바로 그런 고심을 담은 대표적 집적물이다. 남북조 시대의 학자 안지추(顔之推, 531-597?)가 쓴 ‘안씨가훈(顔氏家訓)’은 ‘역대 가훈의 원조’로 불리는 필독 고전이다. ‘안씨가훈’은 20편 5만여자의 분량이지만 가훈의 첫 출발은 간단한 몇 마디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굳이 서물의 형태를 가지지 않더라도 부모의 간곡한 당부라면 모두 가훈이 될 수 있다. 초기 형태의 가훈에는 중국인의 고유한 사유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다. ‘사기’의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동생이며, 성왕(成王)의 숙부이니 천하에서 낮은 신분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선비가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머리를 감다가 세 번이나 감던 머리를 붙들고 달려 나갔고, 한 끼 밥을 먹는데 세 번이나 음식을 뱉어내며 달려 나갔다. 이렇게 예를 다하면서도 천하의 현인을 잃을까 걱정했다. 노나라에 가거든 네가 임금이라고 사람들에게 교만하지 굴지 않도록 하여라.”

발화자는 주공(周公)이다. 주공은 형인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천하의 주인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자 문명국가의 초석을 세운 성인으로 추앙된다. 공자도 ‘논어’에서 꿈에서 오랫동안 주공을 보지 못했다며 탄식할 만큼 평생 동안 흠모한 인물이다.

주공은 노나라를 봉지(封地)로 받았지만 조카인 성왕이 너무 어려 섭정을 하느라 대신 아들 백금을 보냈다. 그러면서 인재에게 겸손하고 백성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다. 왕의 아들(王子), 왕의 아우(王弟), 왕의 숙부(王叔)임에도 주공의 겸손한 태도는 후세에 깊은 감동을 주어 고사성어로 남게 된다. 원문의 ‘일목삼착발, 일반삼토포(一沐三捉髪, 一飯三吐哺)’가 ‘토포악발(吐哺握髮)’로 굳어진다.

아버지만 자식 걱정을 하겠는가,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경강(敬姜)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국어(國語)’에는 그녀가 자식을 훈계한 내용이 있다. 요지는 이러하다. 벼슬아치인 아들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경강이 실을 잣고 있었다. 아들이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고 자책하면서 편히 지내시길 권했다. 홀로 된 어머니를 잘 모시고 싶은 효심에서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뜻밖의 일갈을 한다. “우리 노나라가 곧 망하겠구나. 너 같은 철부지가 벼슬을 하고 있으니.” 그리고 게으름과 나태(怠惰)에 대한 경계를 내린다.

“백성은 부지런히 일해야 생각하게 되고 생각해야 착한 마음이 생긴다. 안락하면 방탕하게 되고, 방탕하면 착한 마음을 잃고 사심(邪心)을 품게 된다. 기름진 땅에 사는 백성이 재주가 없는 것은 안락하기 때문이고, 척박한 땅에 사는 백성이 바르게 되는 이유는 부지런하기 때문이다.……네가 나에게 왜 편하게 지내지 않느냐고 하니 우리 집안 제사가 끊어질까 두렵구나.”

경강은 얼마든지 편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척박하고 궁핍한 노나라의 형편과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에 시집온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았다.

주변의 모두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교육은 어그러진다. 그런 내용이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보인다. “아이가 물과 불에 다친다면 어머니의 잘못이다. 철이 들었는데도 스승을 찾아 배우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잘못이다. 스승에게 배우고도 방향도 없고 깨달은 바가 없다면 스스로의 잘못이다. 이미 깨달았는데도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벗의 잘못이다.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는데도 천거하지 않는다면 담당 관리의 잘못이다. 관리가 천거했는데도 등용하지 않는 것은 임금의 잘못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이 살아있던 왕조시대에 위 인용문은 누구나 수긍할 만한 내용이었다. 이제는 임금을 나라나 사회제도로 바꾸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와 나라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한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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