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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놀토에서 한술 더 떠 놀수는 어떨까

입력
2020.04.28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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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신입생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노트북 화면을 통해 온라인 입학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신입생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노트북 화면을 통해 온라인 입학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놀토’라는 말을 기억하시는가? ‘노는 토요일’이라는 뜻이다. 물론 비공식적인 용어다. 정식 명칭은 토요휴업일. 놀토가 있다는 것은 학교에 가는 토요일도 있다는 뜻이다. ‘공토’ 또는 ‘학토’라고 불렀다. 놀토라는 말은 시나브로 잊혀졌다.

지금이야 토요일은 당연히 쉬는 날이지만 놀랍게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토요일에도 출근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가 성공적으로 월드컵을 치러냈던 2002년에도 우리는 토요일에 직장에 출근하고 학교에 갔다. 공공기관에서 주5일제가 시작된 건 2004년 7월의 일이다.

다시 한 번 놀랄 일인데 토요일은 아직도 휴일이 아니다. 달력을 보시라. 일요일은 빨간 날이지만 토요일은 파란 날이다. 굳이 월~금요일과 다른 색으로 토요일을 표시한 까닭은 예전에 토요일은 반(半)공일이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직장은 오전에만 근무하는 날이었다는 뜻이다. 토요일은 공식적으로 휴일은 아니지만 공휴일이다. 딱히 공휴일이 ‘공무원의 휴일’을 줄인 말은 아닐 테지만 실제로는 그런 셈이다.

학생은 공무원이 아니니 토요일에 학교에 나오라고 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교사는 상당수가 공무원이다. 따라서 토요일에 쉬어야 한다. 공공기관에 주5일제 근무가 도입된 이듬해인 2005년 3월에야 넷째 토요일에 수업을 쉬는 놀토가 도입되었다. 이듬해인 2006년부터는 짝수 주, 그러니까 둘째와 넷째 주 토요일에 쉬었다. 격주로 쉬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다섯 주가 있는 달이 넉 달이나 있기 때문이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도 힘들었다. 다섯째 주 토요일에 학교에 갔는데 바로 다음주는 또 첫 번째 주여서 또 학교에 가야 했으니 말이다. 학교 교사인 우리교회 성가대 지휘자는 다섯째 주가 있는 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달력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아주 간단한 방법은 있었다. 홀수 주에 쉬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공부하고 다음에 쉬어야지, 먼저 쉬고 다음에 학교에 가는 제도를 만드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학교에서 주5일제 수업이 시작된 것은 2012년의 일이다. 이제야 놀토와 놀토가 아닌 주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니까 2012년에 취학한 2004년생부터는 놀토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04년은 놀라운 해다. 부모들에게는 주5일제 근무가 도입되었고, 이 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주5일제 수업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2004년 설날 아버지는 떡국을 드시면서 나라 걱정을 하셨다. 이제 나라는 망하게 생겼다고 하셨다. 안 망했다. 아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2012년 설날에도 아버지는 만둣국을 드시면서 나라 걱정을 하셨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아이들은 멍청이가 되게 생겼다고 말이다. 아이들은 더 건강해졌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은퇴를 앞두신 노교수님들도 불과 3주 만에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지셨다. 심지어 온라인 강의가 더 편하다는 말씀도 하신다. 수 년간 온라인 강의를 추진해 온 대학 당국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둘째 딸아이도 이미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졌다. 온라인 수업의 특징은 엄청난 과제다. 이게 맞다. 대학에 가서 교수님에게 일일이 배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과제를 해 나가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게 올바른 대학교육 아닌가.

초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방송 시스템이 갖추어졌고 정상운영 중이다. 가끔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오프라인 강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시행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해 보니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불편함이 있었지만 출퇴근 시간을 아끼는 장점도 컸다. 우리가 덜 움직이니 환경도 살아나기 시작한다.

뉴노멀이란 말이 낯설지 않다. 사무실의 크기를 줄이고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학교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놀수’를 만들어 보는 거다. 수요일에는 학교에 모이지 말자. 이번에 갈고닦은 온라인 강의 기술을 버리기 아깝지 않은가. 수요일에는 온라인으로 아이들을 만나자.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수요일에는 아이들을 그냥 쉬게 하자. 월요일과 목요일은 학교에서 수업하고, 화요일과 금요일은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수요일엔 집에서 과제를 하는 날로 하는 것은 어떨까?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당장 아이들 점심식사부터 걱정이다. 해결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해 주든지 아니면 바우처를 지급해서 각자 동네에서 점심을 사먹게 해도 된다.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어머니들의 고민도 사회적으로 해결하자. 각자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는 더 많이 만드는 게 당장 해야 할 일이니 말이다.

놀토를 만들 때 걱정했던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다. 놀수를 만든다고 해서 뭔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다. 높아지는 생산성 때문에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놀수를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한술 더 떠보자.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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