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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쏟으며 숨진 복제 탐지견 ‘메이’… 1년 지났지만 바뀐 건 없다

입력
2020.04.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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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콜콜 what] 은퇴사역견 입양 보내기로 했지만 흐지부지 

 제2의 메이 나오지 않으려면 교육기관의 실험동물도 법적 대상 포함돼야 

검역탐지견으로 일하다 서울대학교 수의대에 동물실험용으로 이관된 뒤 실험 도중 사망한 복제견 메이. 서울대에서 실험 후 감사기간 동안 농림축산검역본부로 돌아온 당시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검역탐지견으로 일하다 서울대학교 수의대에 동물실험용으로 이관된 뒤 실험 도중 사망한 복제견 메이. 서울대에서 실험 후 감사기간 동안 농림축산검역본부로 돌아온 당시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1년 전 이맘때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은퇴 탐지견 ‘메이’를 기억하시나요.

2013년부터 5년 동안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센터에서 검역 탐지견으로 일하던 메이와 천왕이, 페브 등 탐지 사역견 세 마리가 은퇴 후 지난해 3월 서울대 수의대로 돌아가 실험에 이용된 것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긴 사건이 있었는데요. 탐지견 세 마리는 지금은 직위해제 된 이병천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수의대 연구팀에서 2012년 10월 탄생시킨 복제견들입니다.

인천공항센터에서 서울대 수의대로 이관된 지 8개월만인 지난해 11월, 서울대 수의대에 대한 ‘동물실험 윤리 감사 기간’ 검역본부로 잠시 돌아온 메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건강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앙상한 갈비뼈가 드러난 채 허리는 움푹 파여 있었죠. 생식기는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었고 사료를 허겁지겁 먹더니 갑자기 코피를 쏟기도 했습니다. 당시 메이가 서울대 수의대에서 동원된 실험은 ‘번식학 및 생리학적 정상성’ 분석 실험. 여러 차례 정자를 채취하고 교배를 시킨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후 9일만에 다시 서울대 실험실로 보내졌고 지난해 2월에 폐사한 사건이 2개월 뒤인 4월 15일 KBS보도를 통해서야 밝혀졌는데요.

메이의 처참한 모습과 뒤늦은 폐사 소식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실험동물 구조단체인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울대 수의대가 실험 중인 퇴역 탐지견을 구조해달라’는 청원을 올렸고 20만명이 넘는 이들이 동의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메이와 함께 보내졌던 천왕이, 페브는 다시 검역본부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요.

살아 있을 당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메이'의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살아 있을 당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메이'의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1년 지났지만 천왕이와 페브는 검역센터에 그대로 

메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1년이 지난 지금, 은퇴 사역견의 처우 등 개선된 점이 있을까요.

사실 현행 동물보호법 제24조에도 장애인 보조견 등 사람이나 국가를 위하여 사역한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금지돼있습니다. 다만 특수목적견을 상대로 한 실험의 경우 예외 조항에 ‘동물의 생태, 습성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는 사역견이라도 실험에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죠. 때문에 메이의 경우 예외 조항을 근거로 은퇴 후에도 실험에 이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메이의 경우 예외 조항에 해당되는지, 또 실험하는 동안 학대는 없었는지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은퇴 탐지견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동물실험을 했고, 불법적인 동물실험으로 빈사 상태로 만드는 등 학대 행위까지 저지른 것으로 의심된다며 이 교수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 지금까지도 수사는 진행 중입니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불가피하게 사역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 할 경우에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사역동물에 대한 실험가능 요건을 제한하기로 했습니다. 오는 2022년까지는 사역동물 불법 실험에 대한 벌칙인 현행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하는 내용으로 동물보호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고요.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또 검역 탐지견 관리 강화를 위해 탐지견 건강관리 전담 수의사를 고용하고, 은퇴 탐지견에 대한 일반 가정으로의 적극적인 분양 추진, 폐사 시는 전문 장례업체를 통한 장례를 치룬 후 추모관 마련 등 자체 훈령을 개정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탐지견을 포함한 사역동물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움직임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먼저 검역본부는 은퇴견에 대한 일반 가정으로의 적극적 분양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요. 하지만 천왕이와 페브는 아직 입양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인천 탐지견센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은퇴견들의 입양을 위해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탐지견 심의위원회가 열리긴 했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의 이견으로 위원회는 무산됐고 그 이후 흐지부지 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페브.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페브.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교육기관서 복제견 위해 동원되는 개들 관리는 여전히 사각지대 

또 다른 근본적 문제는 정부가 동물 실험의 윤리성과 적절성 등을 관리 감독하게끔 하는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에는 대학 등 교육기관은 제외돼 있다는 점과 연관됩니다.

즉, 동물실험시설에서 실험동물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동물실험시설 또는 등록된 실험동물공급자를 통해서 공급된 실험동물만을 사용해야 하는데, 여기에 교육기관이 빠져있다는 것이죠.

사실 메이와 같은 복제견 탄생을 위해서는 난자와 정자를 공급하기 위한 수많은 개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메이를 탄생시킨 이병천 교수 역시 복제견 실험 과정에서 불법 개농장에서 실험견을 공급받아 실험을 했지만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대학이 법의 사각지대를 노려 실험동물을 비윤리적으로 동원하는 사례는 끊임이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경북대 수의대 역시 실습견을 건강원에서 구매해 사용한 것이 밝혀졌는데요, 역시 실험동물법 위반으로는 처벌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당시 동물권 단체인 동물해방물결은 담당 교수 A씨를 직권남용,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최근 무혐의 판결이 났지요. 최근에는 제주대 수의학과에서 해부실습용 동물을 직접 학생들에게 구해오라고 지시한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법의 사각지대 속 국내 대학에서 한 해 실험에 쓰는 동물은 약 100만 마리로, 국내 동물 실험의 34%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천왕이.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천왕이.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동물보호법 내 실험동물의 공급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메이는 계속 나올 것”이라며 “동물실험 관련 제도를 개선해 메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이형주 어웨어 대표도 “대학이라는 교육기관, 그것도 동물을 돌보고 치료하는 수의대 내에서 실험동물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방치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며 “교육기관 내에서의 자정 노력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말합니다.

평생을 사람을 위해 헌신하다 안타깝게 죽은 메이. 메이의 사체는 증거보전을 위해 서울대 수의대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얘기도,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소각처리 됐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정부나 서울대 수의대 측으로부터는 공식적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메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제2, 제3의 메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관심이 계속 필요합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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