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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의 몸과 삶] 나쁜 유전자, 나쁜 국회의원

입력
2020.04.21 18:00
수정
2020.04.21 18:23
25면
0 0
21대 국회의원 배지. 국회사진기자단
21대 국회의원 배지. 국회사진기자단

어떤 생물도 영원히 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어떤 생물체도 살아 가는 도중의 정해진 시기에 새로운 개체를 낳아서 자신의 분신으로 다음 세대에 남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 개체는 비록 죽더라도 동일한 종류, 종속은 멸종하지 않고 이 세상에 남아 있게 된다. 이렇게 생물이 자기와 똑같은 종류의 새로운 개체를 생산하는 것을 생식이라 한다.

우리 몸은 대충 37조개 정도의 엄청나게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에 약 2000억개 정도의 은하계가 있다고 하니까 우리 몸의 세포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세포들은 모두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생식과 관련된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를 생식세포라 하는데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다. 생식은 남녀의 생식세포가 서로 만나 하나가 되는 수정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생식세포는 감수분열이라는 독특한 세포분열을 거쳐 만들어진다. 감수분열은 ‘염색체의 수가 반으로 줄어드는 분열’이라는 의미다. 염색체의 수나 DNA의 양은 2n이라고 표시하는데, 2는 쌍이라는 의미이고, n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각각 받은 염색체 수를 말한다. 사람의 경우 염색체가 23쌍이므로 n값은 23이다.

생식세포가 만들어지는 첫 단계는 다른 세포와 마찬가지로 유전 정보인 DNA를 복제하는 것이다. 생식모세포가 가지고 있던 2n의 염색체가 복제되어 4n이 된 후 두 번의 분열을 연속으로 하여 2n이 되었다가, 최종적으로는 1n에 해당하는 염색체를 가진 난자나 정자가 만들어진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을 하게 되면 유전정보는 1n+1n이 되어 원래의 2n으로 복원된다.

난자나 정자는 23쌍의 염색체 각 쌍에서 하나씩을 취하여 조합하여 23개의 염색체를 가지는 세포가 된다. 그러니까 난자나 정자가 가질 수 있는 염색체 조합의 종류는 ‘2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23번 반복하는 것이니까 2의 23승 즉 약 840만 가지가 된다. 이런 난자와 정자가 만나 만드는 수정란이 가질 염색체 조합의 가짓수는 840만 x 840만, 즉 약 70조 정도가 된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대략 78억명 정도이니 지구상 모든 사람이 같은 유전자조합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만든 이유는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는 개체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염색체의 조합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염색체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태어나지도 못한 채 유산이 될 수도 있고, 유전병이나 선천적 기형을 갖고 살아 가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암과 같은 유전적 소인이 있는 병에 더 잘 걸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많은 생명체에서 염색체 이상이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는 중요한 기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염색체 이상이 모두 나쁘다고 할 것만은 아니다.

얼마전 우리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비례대표를 빼더라도 지역구 253개에서 한 명씩의 대표를 뽑았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많지만 여권과 야권의 후보자 2명씩만 출마했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선출된 의원들의 조합 가능성은 2의 253승이 된다. 계산기로 계산을 해 보았는데 나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나게 큰 수를 보여 준다.

감수분열 과정에서 염색체들 중에서 특별히 원하는 것들만 골라 조합을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은 아직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우주의 큰 원리에 속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선거에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원리에 대하여는 조금 알고 있다. 모든 국민들이 1표씩 행사한 뜻이 모여 이룬 집단지성이 많은 후보들 중에서 한 명을 골라낸다. 적어도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들은 아무나가 아닌 국민들의 집단지성이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래도 선출된 의원들 모두가 다 최고의 적임자는 아닐 것이다. 자질이 조금 부족하거나 어쩌면 유산이나 유전병, 기형을 만드는 유전자처럼 활동하여 정계나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사람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염색체이상이 있다면 힘은 들겠지만 새로운 사회로 발전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택된 의원들은 스스로 잘나서 저절로 뽑힌 것이 아니고, 국민들의 뜻이 모여서 만들어 놓은 조합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여당 의원의 수가 많다고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고, 야당 의원의 수가 적다고 아무 일도 못한다고 하지 말았으면 한다. 모든 의원들은 21대 국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다툴 것은 다투면서 조화로운 의정활동을 하여 더 좋은 나라, 사회,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당부한다.

만에 하나라도 표를 준 국민의 뜻과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의원직을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한다면 과감히 고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유전자라면 유전자가위 기술로 제거하면 될 터인데 잘못하는 국회의원은 어떤 수단으로 바로잡을 수 있을까? 아마도 국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질타가 아닐까 한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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