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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배달의민족’의 배신

입력
2020.04.0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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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배민라이더스 남부센터에서 한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에 나서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구 배민라이더스 남부센터에서 한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에 나서고 있다. 뉴스1

코닐리어스 밴더빌트가 ‘철도왕’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뉴욕항과 연결되는 유일한 철교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철도의 시대가 올 것을 예감한 밴더빌트는 1866년 겨울 돌연 허드슨강 철교를 폐쇄한다. 미국 최대 항구인 뉴욕항의 유일한 육상 통로가 차단되자, 뉴욕항과 미국 전역을 연결하던 철도회사들의 주가가 폭락했고 밴더빌트는 헐값에 경쟁 철도회사를 사들여 미국 역사상 존 D 록펠러에 이어 두 번째 부자가 됐다.

□ 중요한 길목을 차지해 부자가 되는 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워런 버핏은 “독점력을 가진 유료 다리 같은 기업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독일의 글로벌 배달서비스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민족(배민)을 사들이는데 4조8,000억원을 쓴 것도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국내 배달시장의 ‘독점적 유료 다리’를 차지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점유율 절반이 넘는 배민을 사들이며 DH는 국내 배달시장의 98%를 차지하게 됐다.

□ 가격 결정권을 갖게 된 독점 기업이 가격 인상 유혹을 참는 것은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배민이 급성장의 바탕이 됐던 정액 수수료를 폐지하고, 건당 5.8% 수수료 부과를 시작한 것도 그런 점에서 예견된 일이다. 배민은 경쟁 업체보다 수수료가 낮고, 규모가 큰 업체들이 정액 서비스를 여러 개 구매해 노출 횟수를 높이는 ‘깃발 꽂기’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분노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10년 창업 후 10년간 경쟁 업체보다 낮은 수수료를 고집하고, 식당 운영의 고충을 적극 해결해 주던 배민의 돌변은 수많은 식당 주인에게 충격적인 배신이었다.

□ 배민처럼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주는 플랫폼 사업은 강한 공공성이 요구된다. 또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덩치가 커질수록 효율도 높아지는 속성이 있어 독점 유혹이 그만큼 강한 분야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해외 거대 플랫폼 기업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국내 플랫폼 기업의 독점에 관대했지만, DH의 배민 인수는 엄격하게 심사할 모양이다. 특히 ‘데이터 독과점’ 가능성을 집중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늘날 데이터의 중요성은 19세기 철도의 그것을 넘어선다. ‘독점적 다리’를 민간에 맡기는 건 국가 경제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위 결정이 주목된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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