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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다,과학] 전염병 사태에 정답은 없다, 관찰이 필요할 뿐

입력
2020.04.03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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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3>알렉스 브로드벤트 ‘역학의 철학’ 

검역당국이 유럽발 전 여행객들에 대해 코로나19전수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달 23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설치된 선별 진료소에서 여행객들이 진료 및 선별 진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검역당국이 유럽발 전 여행객들에 대해 코로나19전수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달 23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설치된 선별 진료소에서 여행객들이 진료 및 선별 진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바이러스가 일상을 옥죄면서 많은 사람이 평소엔 거의 접하지 못했던 학문 분야를 매일 마주 하게 되었다. 바로 ‘역학(疫學)’이다.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역학(力學)’이나 음양의 원리를 통해서 인생사를 궁리하는 ‘역학(易學)’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분야의 몇몇 개념이 일반 시민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갑자기 몇 년 전 국내에서 소리 소문 없이 나왔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철학자 알렉스 브로드벤트의 ‘역학의 철학’(생각의힘). 물론 이 책의 ‘역학’은 “어떤 인구 집단에서 일어나는 질병과 건강 상태의 변화를 추적하고 탐구하는 학문” 즉, 요즘 귀가 닳도록 듣는 바로 그 분야다.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때라서 어쩔 수 없이 역학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역학의 ‘철학’이라니! 실제로 이 책은 (출간 자체가 기적 같은)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시장의 뜨거운 반응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신종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항하며 우리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어떤 철학에 기반을 둬야 하는지를 놓고서 흥미로운 토론거리를 제기한다.

역학은 뜻밖에도 자연과학이나 의학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은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학’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론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또 그런 이론은 과학 활동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규정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코로나19의 유행)의 해결에 관심을 갖는 역학에서 이론은 쓸모도 없거니와 역학자의 중요한 관심사도 아니다.

의학과의 차이점은 더욱더 흥미롭다. 의학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개인(환자)의 건강이다. 하지만 역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특정 인구 집단(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에 관심을 갖는다. 혹시 토론 프로그램에서 감염내과 의사와 역학 전공자가 나와서 의견 충돌이 있다면, 바로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 2월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이 임시휴업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 2월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이 임시휴업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이 책이 역학을 놓고서 제기한 중요한 문제의식을 변주하고 확장하면 지금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쓸모가 있다. 역학이 전염병(감염병)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가장 강조하는 활동은 ‘관찰’이다. 바이러스 유행의 양상을 편견 없이(이전의 경험과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진 이론 따위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찰하고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항의 출입국 통제가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대다수 전문가가 자신의 가치관과 선입견에 따라서 너도 나도 한마디씩 떠들었고, 또 처음 내놓은 말을 지금도 녹음기처럼 되뇐다. 하지만 ‘역학의 철학’에 따르면 정답은 없다. 신종 바이러스 특징에 따라서, 유행의 양상에 따라서 대응은 달라야 한다.

바이러스 유행으로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감소되면서 과거에 경험한 적 없었던 경제 위기가 예고되는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역시 현상의 관찰에 기반을 둔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그마처럼 “재정 건전성” 타령만 하면, 결국 공동체의 안녕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 케인스도 말했고, 홍상수도 말했듯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역학의 철학 

 알렉스 브로드벤트 지음ㆍ전현우, 천현득, 황승식 옮김 

 생각의 힘 발행ㆍ416쪽ㆍ2만3,000원 

짧은 글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역학과 철학의 중요한 쟁점을 다룰 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적절하지도 않다. 그래도 아쉬우니 한 가지만 덧붙이자.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인과)’를 파악하는 일보다, 그 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여러 변수를 동시에 고려하는 그럴 듯한 설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감한다. 전염병의 원인은 바이러스다. 하지만 지금의 전 세계적 유행에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인간의 환경 파괴, 촘촘히 연결된 세계 등이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국내는 어떤가. 열성 종교 집회, 열악한 노인과 장애인 보호 시설이나 집단 근무 시설(콜센터), 밀집 교육 환경(학교, 학원) 등이 바이러스에 날개를 달아줬다.

지금 무엇인가 배우고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유행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더 큰 재앙에도 똑같이 당할 수밖에 없다. 새삼, ‘역학의 철학’을 추천한 이유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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