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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입력
2020.04.02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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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나가와 역에 마스크를 쓴 일본 시민들. 연합뉴스
도쿄 시나가와 역에 마스크를 쓴 일본 시민들. 연합뉴스

2010년 무렵만 해도 최고의 가수라면 응당 전 국민이 아는 히트곡이 있게 마련이었다. CF 등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무차별적인 자극에, 세대를 초월해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어야만 인기가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고의 가수나 그룹은 있어도 이들에게 세대를 초월하는 전 국민적인 노래는 없다. 즉 가수 이름이나 그룹은 알아도 딱히 히트곡은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매체의 다양화와 선택적 접근으로 인해,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가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시청률 급락과 광고수익 급감은 이와 같은 파편화된 현 상황을 잘 나타내준다. 즉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의 최강자는 있어도 특정 콘텐츠의 절대강자는 쉽지 않은 시절인 셈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시대에, 코로나19가 전 국민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한달 남짓이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 이후로 전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킨 코드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스크인 셈이다. 4G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파편화 시대에, 다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대동단결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여기에는 언론이 만들어낸 과도한 공포가 존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의 언론은 자극과 공포를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언론의 경쟁만으로 전 국민의 마스크 착용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현상의 이면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죽음의 극복’이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불사(不死) 즉 영생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천국이 영생이며, 불교에도 관점은 다르지만 영생에 대한 인식이 있다. 이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의 첫 일성이 “불사의 문은 열렸으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는 것임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유교는 후손을 통한 영생인 제사 주의를 주장했고, 도교의 신선은 말 그대로 장생불사의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종교의 본질에는 방식과 관점은 다르지만 ‘불사에 대한 추구’가 내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영생이 언급되며, 구글에서도 영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현대 과학에서도 영생에 대한 추구는 분명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왜 인류는 이토록 영생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유기체에 내포된 소멸의 불안과 공포, 즉 죽음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 죽음은 계산되지 않는 두려움으로 항상 우리 주변에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감기가 폐렴으로 발전해 죽을 수도 있고, 풀을 베러 나갔다가 입은 상처가 곯아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면서, 죽음은 예측 가능하고 통제된 제한 속에만 존재하는 이방인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모두 죽지만 그것은 지금 당장에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치료제가 없고 정보가 부족한 코로나19의 높은 감염률은 이와 같은 문명의 방어벽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즉 일순간 죽음에 대한의 공포가 환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마스크만이 착용 가능한 유일한 방어 수단이라는 인식이 일파만파되며, 전 국민의 마스크 착용이 이루어진다. 때문에 감염자가 전혀 없는 지역에서도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죽음의 공포가 순간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인간은 모든 꾸밈을 벗고 본능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본능을 딛고 다시금 이성으로 일어서야만 한다. 지금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본질에 비추어 볼 때, 더 밝은 내일의 성숙으로 나가야 할 중대한 고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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