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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내게 필요한 정책은 내가 만든다

입력
2020.03.31 04:30
수정
2020.03.31 17:4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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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동안심상가’ 내 한 식당. 성동구 제공
서울 성동구 ‘성동안심상가’ 내 한 식당. 성동구 제공

21대 국회의원 선거 막이 올랐다.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인한 정치적 혼란에 코로나19 위기까지 더해져 유례없는 깜깜이 선거가 될 전망이다.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번 선거만큼 정책이 실종된 선거도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나없이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겠으니 자신에게 한 표를 달라고 한다. 그나마 입법부는 4년마다 한 번씩 선거로 국민의 정치적 위임을 받은 대리인들을 뽑지만, 행정부는 어떠한가. 실제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결정되는 곳, 내 삶을 바꾸는 행정 서비스가 집행되는 곳, 행정부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길은 없을까?

그런 점에서 ‘정책 공동생산(co-production)’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정책 공동생산이란 행정 서비스를 국민이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다. 정책의 최종 수혜자인 국민이 ‘내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실제 사업으로 구현하며 나아가 그 성과를 함께 평가한다. 과거에는 관료, 의회, 이익집단 등 철의 삼각(iron triangle) 위주로 정책이 결정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교수, 연구자,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등이 참여하는 정책공동체(policy network)가 정책 과정에 관여하였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정책 결정과 집행에서 가장 큰 영향력은 공무원과 전문가들에게 있다.

그러나 행정의 민주성과 공공성, 그리고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시민, 전문가, 시민단체, 협회, 비정부기구 등 다양한 주체들이 신뢰와 공동책임 의식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나라도 최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국민과 정책을 ‘공동생산’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국민참여예산제와 숙의민주주의 도입이 그 예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국가들이 정책 공동생산을 여러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학습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지식을 나누는 네트워크, 사회복지사ㆍ간호사ㆍ물리치료사가 모여 지역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는 커뮤니티케어 서비스, 타임뱅크를 이용하여 마을 주민들 방문복지서비스를 공유하는 사업 등이 그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디어 발굴에서부터 서비스 구상, 집행까지 시민, 행정가, 전문가가 참여하여 이용자가 원하는 행정서비스를 공동생산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도심 속 빈집에 버섯 농장을 만들며 구도심을 재생하는 빈집은행(인천 미추홀구),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상인들을 보호하고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안심상가(서울 성동구), 마을 교육공동체 달팽이 학교(서울 서대문구), 청년 학습도우미가 농어촌 아이들을 교육하는 꿈사다리 공부방(전라남도) 등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우수 사례로 인정받았다. 마을 공동체, 지역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러한 공동생산은 궁극적으로 자치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공동생산을 관(官)이 주도해서는 안 된다. 혁신 사례가 시범 사업으로 그치지 않도록 지속해서 점검하고 평가해야 하며 행정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주인의식과 책임감이다. 시민은 관료의 문제 해결을 기다리는 수동적 정책 고객이 아니라 행정 서비스를 전달하는 주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또한 시민이 정부의 정책을 평가할 때 적용하는 엄격한 잣대를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만들고 집행하는 정책에도 적용해야 한다.

미래사회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명령하는 선장도, 방향 잡는 조타수도 아니다. 정부는 시민, 기업, 자원봉사자, 전문가 협회, 지역사회단체들이 힘을 합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facilitator)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이 천명하고 있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실현하는 행정부를 기대한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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