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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의 삶이 선거보다 중요하다

입력
2020.03.2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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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소를 설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소를 설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시국에 의료진들이 왜 축구장에 있어야 하나?”

영국의 축구 스타 웨인 루니가 되물었다. 루니는 중단된 축구 리그 재개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박지성의 옛 동료로 우리에게 친숙한 루니는, 현재 잉글랜드 2부 리그 더비 카운티에서 선수 말년을 보내는 중이다.

“사회를 먼저 생각하며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축구를 다시 시작할 때가 아니다.” 한때 사고뭉치였던 ‘철든’ 스타의 뼈 있는 한마디는 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영국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걱정과 배려의 마음이 대중의 뜻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루니는 축구 리그의 신속한 재개를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알고 있는데 어떻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무관중 경기여도 앰뷸런스와 의료진은 대기해야 한다. 경찰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국에 이분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더 중요한 곳에 계셔야 할 분들이다.”

루니는 시즌이 재개되고 경기가 열리게 되면, 선수, 코칭 스태프, 미디어 관계자, 버스 운전기사, 경기장 관리 스태프, 요리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모여든다는 것도 상기시켰다. “이분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코로나19 정국에서 우리가 겪는 불편이나 이례적인 조치들은 모두 그 원칙을 공유하기에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고 사회적 격리를 장려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라는 전제하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큰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풋살장, 영화관, PC방, 헬스장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페쇄 여부와 상관없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총리가 발표한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를 위한 담화문’은 절실하게 필요한 조치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코로나19 사태의 빠른 종식을 위해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적극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때론 희생은 솔선수범을 요구한다. 루니에게 축구가, 자영업자들에게 사업이 그랬듯, 지금은 정치인들 역시 유불리를 떠나 사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을 내려야 할 때다.

국회의원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3주도 채 남지 않은 그날까지,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개선될지 의문이다. 정부에서 더욱 강력한 사회적 격리를 권고하며 전국민의 외출 자제를 요구한 게 불과 5일 전이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여전히 등등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투표장에는 유권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투표소에 머무는 진행 스태프들의 숫자도 엄청나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안전을 위한 의료진들의 배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루니의 말처럼, ‘이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의료진이 더 중요한 곳에 머물 수 있도록’ 결단이 필요하다.

선거일 연기가 간단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전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시기에 선거를 강행하는 것이 최선의 조치인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전 세계의 스포츠 이벤트가 모두 중단됐고, 올림픽은 연기되었으며, 러시아는 다음 달로 예정된 개헌 국민투표를 연기했다.

스포츠와 정치는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선순위는 다를 수 있지만, 둘 모두 우리 삶을 낫게 만들려는 수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무엇도 삶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리버풀의 명장 위르겐 클롭 감독은 “축구는 우리 삶의 조금 덜 중요한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 뿐”이라며 축구가 중단된 사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의 말에서 축구를 정치로 바꿔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진정 중요한 것을 위해, 선거일 연기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다.

서형욱 풋볼리스트 대표ㆍ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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