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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촬영지ㆍBTS 정류장… 쪽빛 바다여 ‘그날’까지 기다려 주오

입력
2020.03.25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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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57>강릉 주문진읍

주문진 방사제는 2017년 드라마 ‘도깨비’ 이후 꾸준히 인증사진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집 안에 갇혀 지내는 날이 많다 보니 바다색이 유난히 푸르게 느껴진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후 우울감을 떨쳐낼 여행지로 저장하면 좋겠다.
주문진 방사제는 2017년 드라마 ‘도깨비’ 이후 꾸준히 인증사진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집 안에 갇혀 지내는 날이 많다 보니 바다색이 유난히 푸르게 느껴진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후 우울감을 떨쳐낼 여행지로 저장하면 좋겠다.

전국에 강풍 경보가 내려진 지난 19일, 강릉 주문진 앞바다는 의외로 잠잠했다. 모래 알갱이가 날릴 정도로 바람이 거셌지만 해변에는 잔물결만 일렁거렸다. 자연현상에 대한 얄팍한 상식은 빗나갔고 바다는 거짓말처럼 평화로웠다. 코로나19와의 싸움도 다르지 않으리라. 순간의 방심이 언제 걷잡을 수 없는 폭풍과 파도로 돌변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사태 끝나면 ‘코로나 블루’를 날려 버릴 곳으로 주문진 바다를 소개한다.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는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있을 터이니 갑갑해도 견딜 밖에.

◇향호해변 BTS 정류장과 소돌해변 아들바위공원

주문진 바다는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시작한다. 주문진 가장 북쪽 향호해변과 맞닿은 2차선 도로에 바다를 등진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다. 버스는 다니지 않는다. BTS가 2017년 발표한 ‘You never walk alone’ 앨범 재킷을 찍기 위해 세운 시설이다. 촬영이 끝난 후 철거했다가 BTS의 인기에 강릉시에서 다시 세웠다.

‘그리움들이 얼마나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이 앨범의 타이틀곡 ‘봄날’의 가사다. 백사장과 바다는 찬란한 봄빛이건만 움츠린 마음은 혹독한 겨울이다. 인적 뜸한 해변에 그네와 하트 모양 의자 등 사진 찍기 좋은 소품이 여럿 설치돼 있다.

주문진 북쪽 향호해변의 ‘BTS정류장’. 앨범 재킷 촬영 후 철거했다가 강릉시에서 다시 세웠다.
주문진 북쪽 향호해변의 ‘BTS정류장’. 앨범 재킷 촬영 후 철거했다가 강릉시에서 다시 세웠다.
향호해변과 이어진 주문진해변의 하트 그네 조형물.
향호해변과 이어진 주문진해변의 하트 그네 조형물.

이곳에서 조금 내려오면 소돌해변이다. 바다로 돌출된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어서 붙은 지명이다. 바닷가 바위 언덕을 따라 목재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바로 앞은 아들바위공원이다. 까마득한 옛날 지각변동으로 융기한 바위 모양이 꽤 볼 만하다. 얼기설기 둥글게 파인 바위 군상이 자연조각공원이다. ‘아들바위’는 아들 낳는 게 지상 과제였던 여인들의 간절함이 투영된 이름이다. 구시대의 흔적이니 안내문도 ‘아들’을 ‘자식’으로 슬쩍 바꿨다.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드는 파도가 갯바위를 넘어 맑은 물웅덩이가 형성돼 있다. 그 투명한 바다에 하늘과 바위가 담긴다. 징검다리 건너듯 갯바위를 걸으며 감상할 수 있다.

소돌해변 인근 아들바위공원.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천연 조각공원이다.
소돌해변 인근 아들바위공원.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천연 조각공원이다.
아들바위공원 주변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아들바위공원 주변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잔잔한 파도가 아들바위공원 갯바위를 넘실거린다. 평범한 일상이 더욱 그리운 시절이다.
잔잔한 파도가 아들바위공원 갯바위를 넘실거린다. 평범한 일상이 더욱 그리운 시절이다.

◇주문진 등대마을과 꼬댕이공원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주문진항이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도로변에 오징어를 형상화한 상징탑이 세워져 있다. 탑에 붙은 1960년대 사진을 보면 둥그런 포구에 어선이 개미떼처럼 몰려 있다. 수산물 좌판 풍물시장은 주문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펄떡거리는 활어를 골라 회를 떠서 인근 식당에서 바로 먹거나 포장할 수 있는 시장이다.

주문진항 상징탑에 붙어 있는 1960년대 항구 사진.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전설이 줄줄이 엮여 나올 풍경이다.
주문진항 상징탑에 붙어 있는 1960년대 항구 사진.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전설이 줄줄이 엮여 나올 풍경이다.
주문진항 수산물 좌판 풍물시장. 주문진 여행객이 꼭 들르는 곳이다.
주문진항 수산물 좌판 풍물시장. 주문진 여행객이 꼭 들르는 곳이다.

주문진에도 이북에 고향을 둔 주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항구 입구 소공원에 주문진을 소재로 한 시들이 걸려 있다. ‘개또이 아바이 괴기 마이 잡았소, 깡다구네 엄마의 억센 함경도 사투리가 수용소의 아침을 깨운다…배타는 개똥이네 아버지, 어판장 일보는 깡다구네 형, 개고기 파는 육손이네 엄마’. 신승준 시인의 ‘주문진 수용소’ 일부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등대 주변 ‘새뜰마을’에 그 고단했던 타향살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경사진 비탈에 층층이 지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람 둘 겨우 비껴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 끝 모르게 이어진다. 막혔는가 싶으면 연결되고, 이어질 것 같은 골목이 갑자기 낭떠러지다. 마을 주민이 아니면 목적지를 찾아가기 힘든 미로다. 꼭대기 골목을 걸으면 눈높이보다 낮은 지붕과 처마 밑 손바닥 만한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가족처럼 허물없이 지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문진등대 새뜰마을.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덮고 알록달록 깔끔하게 단장했다.
주문진등대 새뜰마을.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덮고 알록달록 깔끔하게 단장했다.
언덕 꼭대기 골목길은 전망 좋은 갤러리로 변신했다.
언덕 꼭대기 골목길은 전망 좋은 갤러리로 변신했다.
1918년 건립된 주문진등대는 강원도 최초의 등대다.
1918년 건립된 주문진등대는 강원도 최초의 등대다.

주문진등대에서 성황당까지 이어지는 새뜰마을 지붕은 최근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예쁘게 단장했다. 화사하게 변신한 골목 외벽에는 주문진항의 고깃배를 주제로 한 그림이 걸렸다. 바다가 보이는 골목길 갤러리다.

고단함으로 점철된 그 길이 바다 전망은 으뜸이다. 1918년 강원도 최초로 건립한 주문진등대는 석회로 마감해 새하얀 외벽이 돋보인다. 등대 앞에 일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주문진 성황당은 항상 위험에 노출된 어민들을 위로하는 마음의 안식처다. 조선 광해군 때 목숨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의 명복을 빌기 위한 사당으로 세워졌지만, 점차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시설로 자리 잡았다. 성황당 뒤편은 ‘등대꼬댕이공원’이다. 등대 마을의 언덕 꼭대기라는 의미다. 주문진항이 바로 코앞이라 전망은 등대보다 오히려 뛰어나다. 어선이 드나드는 둥그런 포구 뒤편으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백두대간 선자령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주문진 성황당 뒤편 ‘등대꼬댕이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주문진항 풍경. 배가 드나드는 항구를 눈 덮인 선자령이 그림처럼 감싸고 있다.
주문진 성황당 뒤편 ‘등대꼬댕이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주문진항 풍경. 배가 드나드는 항구를 눈 덮인 선자령이 그림처럼 감싸고 있다.
등대꼬댕이 공원에서 보는 바다 풍경. 포구를 빠져나간 어선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등대꼬댕이 공원에서 보는 바다 풍경. 포구를 빠져나간 어선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주문진 방사제…식지 않은 ‘도깨비’ 인기

2017년 초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인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주문진항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주문진 방사제가 나온다.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한 시설로, 제방에서 바다로 길쭉하게 설치한 20~30m 길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한 주문진 방사제에는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연인과 가족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한 주문진 방사제에는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연인과 가족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유와 김고은처럼…주문진 방사제에서 한 커플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공유와 김고은처럼…주문진 방사제에서 한 커플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가족 여행객이 주문진 방사제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가족 여행객이 주문진 방사제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갈매기와 춤을… 아빠와 딸이 주문진 방사제 인근 해변에서 갈매기 떼를 쫓아 내달리고 있다.
갈매기와 춤을… 아빠와 딸이 주문진 방사제 인근 해변에서 갈매기 떼를 쫓아 내달리고 있다.

주인공 공유와 김고은처럼 연인들의 ‘인증샷’ 장소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코로나에 강풍까지 불어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차례를 기다려 사진을 찍으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따금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하늘이 투영된 바다는 시리게 푸르렀다.

강릉=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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