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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편리함이 곧 프리미엄이다, ‘편리미엄’

입력
2020.03.24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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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반 제품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팔리는 제품을 흔히 ‘프리미엄’이라 부른다. 프리미엄은 ‘본래 가격에 덧붙여진 금액’으로 정의된다. 증권업에서는 주가가 액면가액을 상회할 때 그 차이를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부동산업에서도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아파트의 분양 가격보다 실제 거래되는 시세가 더 비쌀 때, 그 차이를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기업이 프리미엄 전략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가치를 높게 지각하고,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면 기업 이윤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프리미엄 속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바뀐다. 때로는 ‘차별화된 기능’이, 때로는 ‘탁월한 디자인’이 프리미엄의 중요한 속성이 된다.

그렇다면 요즘 프리미엄을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일까. 대답은 바로 ‘편리함’이다. 내 시간을 절약해주고 노동력을 아껴주는 편리함에 대해선, 사람들이 기꺼이 추가 비용을 지불한다. ‘트렌드코리아2020’ 책에서는 ‘편리’가 곧 ‘프리미엄’이란 의미에서 ‘편리미엄’이란 신조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편리함이 프리미엄의 중요 속성으로 부상한 이유는 단연 ‘시간’의 가치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요즘 사회를 일컬어 ‘구매경제’가 ‘경험경제’로 전환하는 시기라 말한다. 구매경제시대엔 제품을 소유할 때 만족감이 극대화되지만, 체험경제시대엔 새로운 경험을 추가할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구매경제시대엔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돈’이 중요했다면, 체험경제시대엔 돈만큼이나 ‘시간’도 중요하다. 샤넬백은 다른 사람이 대신 줄을 서서 사줄 수 있지만, 영화는 내 시간을 내지 않으면 절대 보기 어려운 것과 같다.

편리함이 곧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에 다양한 편리미엄 제품군이 부상하고 있다. 과거 필수가전이라 불리던 TV나 대형냉장고는 선택가전이 된 반면, 신이 내린 3대 가전이라 해서 ‘삼신(三神)가전’이라 불리는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빨래건조기는 새로운 필수가전이 된다. 처음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기름 없이 요리한다고 해서 건강함을 강조하던 ‘에어프라이어’도 최근엔 편리한 조리를 지원하는 가전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불 앞에서 음식이 넘칠까 자리를 지켜야 하는 불편함 대신, 재료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요리가 완성되는 ‘멀티압력쿠커’ 제품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다.

편리미엄 제품군은 아니지만 이로 인한 시장 변화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예컨대, 간편식 같은 편리미엄 식생활이 확대되면 칼, 도마와 같은 조리 도구나 주방세제 판매량, 심지어 가스레인지 불 사용량이 감소할 수 있다. 집안 인테리어도 변한다. 요리를 하기 위한 필수 품목이었던 아일랜드 식탁이 주방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자리한다. 냉장고 기능도 영향을 받는다. 채소나 고기 등 원재료를 보관하는 기능 대신 완성된 요리를 보관하는 기능이 강조될 수도 있다.

편리미엄의 시대라고 해서 편리함을 극대화하는 전략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람들은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불편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 즉 성취감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요즘 판매량이 늘고 있는 ‘냉동생지’는 공장에서 반죽과 발효과정을 거친 밀가루 반죽을 마트에서 판매하는 제품인데, 집에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기만 하면 갓 구운 빵을 맛볼 수 있어 인기다. 배달앱으로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주문하면 더 편할 텐데 굳이 밀가루 반죽을 구매해 집에서 굽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내가 이 빵을 구웠어!’의 성취감 때문일 것이다. 편리미엄 시대의 최대 과제는 편리함과 불편함 사이의 어느 지점인 ‘적정 편의’를 제대로 찾는 것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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