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는 요즘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직장을 쉬거나 그만두도록 강요당하는 이들의 상담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감소를 이유로 무급휴가 사용 통보를 받은 학원강사, 사태 진정 후 복직을 전제로 권고사직을 강요당한 공항 직원 등 벼랑 끝으로 내몰린 5인 미만ᆞ무노조 업체 노동자나 파견ᆞ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지난주 이 단체의 상담 중 40%가 무급휴직, 임금삭감, 해고ㆍ권고사직 문제였다.
□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위기는 이들에게 먼저 닥친다. 하청업체에 속한 콜센터 상담원들은 마스크조차 쓰지 못한 채 일하다 코로나에 집단 감염됐다. 감염 상담원 중에는 주말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출근 전 새벽에 녹즙 아르바이트를 하는 투잡족도 있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을 위협받지만 이런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치다. 한 취업 포털이 1,089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기업은 60.9%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36.8%에 그쳤다.
□ 감염병으로 닥친 경제 위기를 타개할 사회안전망도 이들에게는 성글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면 휴업수당을 받을 수 없고, 건설노동자 같은 일용직들은 고용보험 자격일수(180일)를 채우기 어려워 고용유지지원금 신청도 어렵다.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특수고용직에게 실업급여는 그림의 떡이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법정 휴업수당(평균임금 70%) 이하로 주는 사업장이 60%나 되니 노조가 없는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 고용보험(실업급여)은 재정당국의 오랜 외면 속에 1995년 7월 가까스로 도입됐지만, 결국 외환위기에 따른 대량실업을 극복하는데 중추 역할을 했다. 1998년에만 시행령이 세 번 바뀌어 10인 미만이던 적용 범위가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이는 외환위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혁명적 확대’였다는 것이 당시 정책담당자(정병석 전 노동부 차관)의 회고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취약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대폭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하는 이유다. 가입이 불가능했거나 문턱이 높아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한 제도의 전향적 개선은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와 국회가 해결해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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