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이것은 민심인가 꼼수인가

입력
2020.03.13 18:00
26면
0 0

민주당 비례연합정당 참여, 꼼수 비판 직면

자신들만 선하다는 독선이 ‘내로남불’ 낳아

괴물과 싸우며 괴물 닮아 가는 것 경계해야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에 참여할지 여부를 당원에게 묻기로 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 민주당 당원이 모바일 투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에 참여할지 여부를 당원에게 묻기로 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 민주당 당원이 모바일 투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주사위는 던져졌다. 논란과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길을 더불어민주당이 택했다. 79만 권리당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찬반 투표 결과에 따랐다지만, 이 결정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거대 양당의 과잉 대표 현상을 완화하고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을 늘리자는 취지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공수처 신설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촛불 입법’ 성과로 꼽는 대표적 개혁 과제다. 하지만 민주당 어느 의원의 고백처럼, 국민에게 이번 선거법 개정은 하나마나 한 것이 되어 버렸다. 가뜩이나 의원정수 확대가 없던 일이 되고 비례 47석 가운데 연동형을 30석으로 제한하면서 처음과 비교하면 제도가 많이 초라해진 상태였다. 그러다 이제 민주당까지 위성정당 대열에 가세하면서 양당의 독과점 체제는 도리어 강화됐고, 의원 꿔주기와 초유의 비례 순번 협상 등 편법과 꼼수가 판을 치게 됐다. 민주당은 이러려고 지난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당이 의석을 도둑맞게 된 정치적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상대가 중앙선을 침범하면 방어운전을 해야지 1차 선만 지키면 어떡하나’, ‘상대가 골목상권을 침탈하듯 들어왔으니 우리도 들어가서 같이 골목상권을 지켜야 한다’ 등등. 실리를 앞세운 현란한 방어 논리가 어지럽지만, 일리가 없는 건 아니고 절박함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미래통합당 위성정당을 ‘유령 정당’이라며 고발하고 자신들은 그런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한 지 한 달도 안 돼 말을 바꾼 데 대한 부끄러움은 어디에도 없다.

‘내로남불’ 심리의 심연에는 통합당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1당을 넘겨줄 수 없다는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지나쳐 상대를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쯤으로 여기게 됐다는 점이다. “수구ㆍ보수세력이 국회의 다수파가 되는 것을 막는 것에 우선하는 명분이 무엇인지 저는 알지 못한다”는 586세대 중진 의원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제3자가 볼 때는 결국 “강도냐, 도둑이냐”(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차이인데도 민주당은 자신들이 지면 역사가 퇴행하고 대통령이 탄핵 당한다는 극단적인 대결 프레임을 작동시킨다.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거부한 정의당을 향해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고 겁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들만 옳고 선하다는 오만과 독선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은 조국 사태 때도 그랬다. 밀리면 안 된다며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반칙과 특혜에 눈감고 기어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후 대통령이 사과했지만 광장의 여론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쪼개지고 난 뒤였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한 건 탄핵 이후에도 반성하고 혁신하지 못한 통합당이 있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적폐청산의 유효기간은 이제 지나갔다. 야당의 꼼수를 심판해야 하니 자신의 책임이나 허물은 눈감아 달라는 논리는 옹색하다.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명대사로 유명하다.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명대사로 유명하다.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으로 야당의 승리가 점쳐졌던 2012년 총선은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기록했다. 민주당이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는 말이 나왔다. ‘나꼼수’ 멤버 김용민 후보의 과거 막말 발언도 영향을 미쳤지만 집권여당 시절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결정을 뒤집은 선거공약을 내놓은 게 결정타였다. 그때도 민주당은 옳은 일은 한다는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 역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대가 한참 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꼼수에 꼼수로 대응하는 방식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비례에서 몇 석 더 얻을지 몰라도 지역구에서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건 기우가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전히 자신들이 옳으니 결국 민심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김영화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