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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언의 식품 속 이야기] ‘코로나 숙주’ 박쥐는 왜 폐렴에 안 걸릴까

입력
2020.03.12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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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하고 바이러스에도 강한 박쥐가 먹는 것을 연구하면 면역과 장수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장수하고 바이러스에도 강한 박쥐가 먹는 것을 연구하면 면역과 장수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힘들어 하고 있다. 치료약이 없으니 예방이 최선인데,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막기는 쉽지 않다. 혹시 이런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주는 음식이 있을까? 사스 때는 김치가, 이번에는 인도의 카레가 비결로 떠올랐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바이러스의 숙주로 알려진 박쥐에는 특별한 점이 많다. 포유류 중에 유일하게 비행능력이 있어 초음파를 이용해 어둠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포유동물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종으로 진화하여 극지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살아간다. 더구나 바이러스에도 엄청나게 강하고 수명도 길다.

박쥐는 어둡고 습한 동굴, 병원균이 많은 곳에서 모여 살기 때문에 한 마리라도 감염되면 급속도로 전파된다. 그런데도 박쥐는 바이러스에 죽지 않고 잘 버텨 137종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을 정도로 바이러스의 저장고 역할을 한다. 이번 코로나19 뿐 아니라 나파, 사스, 에볼라, 메르스 바이러스의 기원 역시 박쥐로 알려졌다. 박쥐는 바이러스에 강하지만 수명도 아주 길다. 포유류의 수명은 대사율, 체중 등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보통 몸집이 클수록 심장박동과 신진대사가 느리고 수명이 길다. 인간도 포유류 중에서는 체중에 비해 오래 사는 편인데 박쥐는 그보다 훨씬 오래 산다. 몸무게가 7g에 불과한 ‘브랜츠 박쥐’가 무려 40년을 생존한다고 하니 쥐가 2~3년에 사는 것에 비해 정말 오래 사는 것이며 인간으로 치면 240년을 사는 셈이다. 이렇게 장수하고 바이러스에도 강한 박쥐가 먹는 것을 연구하면 면역과 장수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박쥐의 먹이는 다양하다. 육식성 박쥐는 개구리, 새, 물고기 등을 먹고, 식충성 박쥐는 딱정벌레, 나방 등의 곤충을 먹고, 과일 박쥐는 열대지역에는 과즙이나 화분을 먹고 산다. 박쥐의 70%는 곤충을 먹고 산다고 하니 우리도 곤충을 많이 먹으면 수명도 길어지고 면역력도 높아질까? 그런데 박쥐가 바이러스에 끄떡없는 것은 면역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약해서라고 한다.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면역체계가 발동해 바이러스와 면역세포의 사투가 벌어지는데, 그 와중에 조직 손상도 있고, 염증반응으로 체온이 올라가고 통증도 발생한다.

면역이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면 좋은데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고 전투가 점점 더 강렬해지고 오래 지속되면 내 몸에 큰 문제가 생긴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는 이상하게 건강한 젊은이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당시 5,000여만 명의 희생자 가운데 70% 이상이 25~35세 사이의 건장한 젊은이들이었다. 그 이유가 미스터리였는데 이것도 면역의 과잉반응으로 해석한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보다 유난히 면역체계의 과민 반응을 유도했고, 그 결과 체내에 사이토카인 폭풍이 발생하여 급격하고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사망했다는 해석이다.

면역체계가 감염에 맞서 싸울 때, 호중구나 대식세포 같은 면역 세포들을 감염 부위로 모이게 하는 신호를 분비하는데, 이렇게 모인 면역세포들에 의해서 더 많은 사이토카인이 분비된다. 이것이 잘못되어 통제되지 못하고 폭풍이 일어나는 것 같은 연쇄적인 증폭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면역세포의 수월한 통행을 위한 혈관확장이 일어나고, 감염 부위에 면역세포가 계속 모여들어 부어 오르고, 병원체를 죽이기 위한 과도한 발열 반응이 일어나 체온이 42도로 높아지는 고열이 발생한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바이러스를 죽이는 효과도 높아지겠지만 우리 몸에 중요한 효소 등의 단백질도 변성되어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과거에는 면역이 감염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에 면역세포와 병원체간에 ‘네가 먼저 죽든지 둘 다 죽든지’ 하는 총력전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코로나19에 어린이들은 증세가 약하다고 한다. 그것은 면역 시스템이 바이러스와 싸우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박쥐가 바이러스에 강한 것은 박쥐의 면역시스템이 바이러스를 잘 죽여서가 아니라 체온을 올리는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바이러스와 공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음식을 통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겠다는 것은 의미 없는 고민인 것이다.

박쥐를 미워할 형편도 아니다. 지구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대체 불가능 종으로 영장류, 벌, 균류, 플랑크톤 그리고 박쥐가 꼽힌다. 박쥐는 해충조절, 화분매개, 종자분산에 기여함으로써 생태계 순환과 기능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면역은 있지만 면역력이라는 것은 없다. 면역이란 면역세포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적을 잘 식별하는 능력이 좋아야만 좋은 면역이고 그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현재까지는 백신 밖에 없다. 한 가지 백신이 모든 감염원에 대한 식별력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면역 능력을 면역력이라는 단어로 종합하여 평가할 수는 없다. 그리고 특별한 뭔가를 먹어서 강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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