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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상상력 빈곤 드러난 ‘상품권 추경’

입력
2020.03.11 18:00
수정
2020.03.11 18: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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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추경, 규모도 정책도 구태의연

효과 없는 상품권 살포 매달리지 말고

위기를 기회로 삼을 상상력 발휘해야

추경호 미래통합당 간사와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간사 등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 심의를 위해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추경호 간사, 김성식 무소속 의원, 김정우 간사, 유성엽 민생당 공동대표. 뉴스1
추경호 미래통합당 간사와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간사 등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 심의를 위해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추경호 간사, 김성식 무소속 의원, 김정우 간사, 유성엽 민생당 공동대표. 뉴스1

국회가 10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안 심의에 착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추경 편성을 지시하면서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추경에서 상상력이 발휘된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여야도 한목소리로 소극적이고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현 사태의 위급성을 고려하면 규모부터 소극적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11조7,000억원의 추경으로는 국내총생산이 고작 0.15~0.17%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내수는 물론 수출도 추락하는 복합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규모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40조원은 돼야 한다”고 답답해했을 정도다. 국회 추경 심의 첫날부터 여야 모두 추경 확대와 2차 추경을 촉구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피해 기업 지원은 구태의연하다. 코로나19의 충격은 규모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기업을 강타하고 있다. 연말 대비 승객 수가 85% 이상 감소한 항공사부터 하루 매출 0원을 찍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대출 금리 인하나 고용유지지원금 등은 한가한 대책이다. 게다가 절차가 복잡하고 기간도 길어 ‘사후약방문’이라는 비명이 쏟아진다. 지원책 중 그나마 단기간 효과가 나타날 방안이 영세 자영업자 부가가치세 감면이다. 그런데 그 대상을 현재 연 매출 4,800만원 이하에서 6,000만원 이하(약 90만명 혜택)로 확대해 너무 부족하다. 매출 기준을 1억원 정도로 올리자는 야당 입장에 여당의 적극 협조가 필요하다. 임대료 인하 건물주에게 세액 공제를 해주는 방안 역시 현 5인 미만(서비스업 기준)인 자격 기준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민생ㆍ고용 안정을 위한 지원책은 최악이다. 2조6,000억원 규모의 상품권을 통해 이뤄져 이번 추경은 ‘상품권 추경’이란 별명이 붙었다. 상품권으로 지급하면 저축을 막고 소비를 촉진할 수 있어 이를 통해 취약계층 지원과 지역경제 활력을 동시에 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정책인데, 이번에도 개선책 없이 반복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와 예산결산위원회는 상품권 가맹점 비율이 낮아 사용이 불편하고, 발행 비용이 발행액의 3, 4%나 되며, 온누리상품권의 경우 사용 기한이 5년이라 단기 소비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에 대한 상품권 지급 역시 취약계층 지원과 소비 활성화를 뒤섞는 바람에 양쪽 모두 실패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시급한 지원 대상은 일을 나설 수 없는 노인이다.

감염병 방역체계 보강 및 고도화는 추경이라는 한계를 고려해도 상상력 빈곤의 결정판이다. 의료기관 손실 보장과 격리자 생활비 지원에 2조2,000억원이 배당된 반면 대응 역량 강화에는 고작 1,000억원만 배정됐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급속한 도시화로 향후 전 세계적 감염병 확산이 점점 잦아질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방역체계 허점을 보강하는 투자는 경기 활성화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추경에 그런 중장기 계획의 단초가 될 항목을 넣어야 한다. 매번 좌절된 원격진료 체계 구축, 특정 지역 영리병원 설립 등이 그것이다. 원격진료 체계 구축을 통해 기저질환 환자들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병원을 찾는 일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 싱가포르처럼 외국인 환자 전용 영리병원이 제주나 송도에 설립된다면, 감염병 발생 시 그 병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유되는 경제 위기 상황을 틈타 이권을 챙기려는 주장들은 자제해야 한다. 법인세 인하가 대표적이다. 시급한 지원 대상은 고비를 넘기지 못할 기업들이지, 이 와중에도 이익을 내 세금을 내는 기업이 아니다. 법인세를 낼 수 있을 만큼 든든한 기업은 국가적 위기를 맞아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애국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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