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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창(窓)] 인구문제,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만성질환

입력
2020.02.25 18:00
수정
2020.02.26 10: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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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이 즉각ㆍ가시적인 코로나19와 달리

인구 위기는 장기적이라 쉽게 체감 못 해

대응 늦어질수록 감염병만큼 치명적일 것

인구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치료제도 백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구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치료제도 백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한 주 동안 발생한 일들은 신종 감염병의 확산이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확인해준다. 위기의 징후는 매우 가시적이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매일 늘어나고 있다. 모임과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병원과 상점은 문을 닫고, 평범한 시민의 일상은 긴장과 두려움에 잠식되고 있다. 이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는 현재로서는 경제적 손실을 따지는 일조차 무의미해 보인다.

중국인 입국 제한을 둘러싼 논란 등 정부 대응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사안과 비교할 때 정부의 대응은 신속하고 적극적인 편이다. 신규 감염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빠르게 제공되고 격리, 입원, 폐쇄, 소독 등 조치가 즉각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감염병 대응시스템의 추가적인 강화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는 아마도 그 영향이 즉각적 가시적이고, 불특정 다수가 위험에 노출되며, 초기 확산방지가 중요한 감염병의 특성을 반영하리라.

저출산과 고령화로 대표되는 인구 변화도 종종 국가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인구문제는 여러 특성에 있어서 코로나19의 대척점에 있다. 첫째, 인구 변화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 감소도 해가 바뀌어야 체감된다. 둘째, 다수의 국민에게 인구문제는 당장 절실한 나의 문제가 아니다. 훗날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겨지기 쉽다. 셋째, 인구변화의 영향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인구가 줄면 오히려 삶의 질이 개선되리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대응에 있어서도 인구문제는 코로나19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감염병과 비교할 때 인구 변화의 원인과 영향은 확실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와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여러 정부 부처의 영역과 중첩되어 있다. 누구의 의견을 들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전문가들의 문제의식과 목소리는 그들의 배경만큼이나 다양하다.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검증된 대책을 마련하기 힘들고, 어떤 방안이든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정책의 책임 소재는 모호하다.

인구 변화는 과연 위기를 가져올까? 아마도 감염병 위기나 금융 위기 혹은 안보 위기처럼 순식간에 국민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 위험 요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볼 때는 그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유례를 찾기 어려운 출생아 수의 빠른 감소는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의 연간 출생아 수는 지난 20년 동안 절반으로, 지난 4년 사이 3분의 2로 감소했다. 이처럼 빠른 인구 변화는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여러 가지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에 적응하거나 대응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그 결과로 국민의 평균적인 삶은 팍팍해지고, 인구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감염병과 대비되는 특성들은 인구 변화를 더 심각한 위기로 키울 가능성이 있다. 비교적 느린 속도는 역설적으로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변화가 감지되는 기간은 정책당국자의 임기보다 길어서 시행한 정책의 공과를 명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분야별로 파편화된 접근은 종합적, 유기적인 방안의 도출을 가로막고, 인구문제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개인과 집단의 이념 혹은 이해를 관철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며,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조정ㆍ조율 기능은 취약하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기보다는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유혹이 클 것이다.

과거의 감염병이 그러했듯이 코로나19도 언젠가는 잦아들 것이다. 머지않아 치료제와 백신도 개발될 것이다. 그러나 인구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치료제도 백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현명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아주 오랫동안, 서서히 우리 사회의 활력과 기능을 떨어뜨리고 국민의 삶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만성질환이 그러하듯이.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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