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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의 중동오디세이] 트럼프식 세기의 거래, 복잡해진 방정식

입력
2020.02.23 18: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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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에서 ‘세기의 거래’로 불리는 중동평화안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에서 ‘세기의 거래’로 불리는 중동평화안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평화 구상, 이른바 ‘세기의 거래’ 발표 이후 팔레스타인의 반발이 거세다. 팔레스타인 정치연구소 여론 조사에서 94%의 팔레스타인 국민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아랍연맹 회의에서 트럼프의 중동평화 구상안은 거부되었고,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도 세기의 거래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아랍의 여론을 감안한다면 트럼프 평화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선거 국면을 의식한 트럼프는 현실적인 두 국가 안을 제시했다고 자평하지만 아랍 신문에서는 ‘다울라 무스타힐’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아랍어로 ‘불가능 국가’라는 의미로 팔레스타인은 주권국가로서의 기능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다. 아랍 언론의 격한 반발 속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본격적인 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팔레스타인의 거센 반발

아랍 여론이 요동치는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지역과 요르단 계곡을 순전히 이스라엘 영토로 획정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 영토 중에서 비교적 수자원이 풍부한 비옥한 땅으로 간주된다. 알짜배기 땅을 내어주는 대신 이스라엘로부터 네게브 사막의 일부 영토를 가져가라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은 트럼프가 국제 규범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2016년 12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34호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를 비난하며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당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표를 던짐으로 가능했다. 전임 오바마의 결정이 트럼프의 중동 평화안에 대한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는 상황이다.

둘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성지가 포함된 예루살렘 영유권 문제에 대한 반감이 크다. 세기의 거래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수도는 분리될 수 없는 통합된 예루살렘에 위치한다. 팔레스타인은 아부 디스를 포함한 예루살렘 동부 지역을 수도로 삼게 되며, 미국 대사관도 새로운 팔레스타인 수도에 문을 열게 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이슬람의 성지가 있는 올드 시티 관할권을 이스라엘이 갖는 조건하에서는 예루살렘의 지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이다. 압바스가 “예루살렘을 팔아 넘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원

세기의 거래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속마음을 읽기란 쉽지 않지만 현지 언론의 분석과 드러난 행보를 통해 유추해 본다면 우선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압바스의 격한 반응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대니 다논 유엔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압바스에게 실용적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며 협상 파트너로 부적절하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1935년생인 압바스는 한국 나이로 86세를 맞이했다. 팔레스타인 국민들 사이에 젊은 새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상존한다. 특히 가자 지구의 하마스를 끌어안을 수 있는 ‘뉴 페이스’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내 리더십 교체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소위 ‘압바스 이후’를 준비하며 장기전으로 돌입한 이유이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해 줄 다자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2월 유엔 안보리에 참가한 압바스는 미국이 유일한 중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중동평화 4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했다. 2002년 마드리드에서 출범한 중동평화 4자회담은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 유엔으로 구성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협의체이다. 한때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국제사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압바스는 미국 중재의 편파성을 부각시키면서 꺼져가는 다자회담의 불씨를 살려 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현재로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계산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실용적인 팔레스타인 지도자의 등장 가능성은 낮다. 압바스를 계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들은 대부분 강경파들이다. 팔레스타인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원하는 협상이 원만히 전개되기 힘든 이유이다. 중동평화 4자회담 재개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입장도 걸리지만 더 큰 문제는 열쇠를 쥔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나설지가 미지수이다. 최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돈독한 친분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워싱턴에서 트럼프와 함께 세기의 거래를 발표한 네타냐후는 귀국 편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에게 중동 평화안에 대한 이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러시아는 세기의 거래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보여줄 수 싸움, 그에 따른 ‘중동평화 방정식’은 점점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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