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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꿔본다, 어린이]어린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서사를 존중하라

입력
2020.02.21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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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모리스 샌닥의 ‘넛셀 라이브러리’ 시리즈 책 ‘무슨 상관이람’의 한 장면. 시공주니어 제공
모리스 샌닥의 ‘넛셀 라이브러리’ 시리즈 책 ‘무슨 상관이람’의 한 장면. 시공주니어 제공

<1>모리스 샌닥의 ‘넛쉘 라이브러리’

성인 독자가 어린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으로 즐기려는 이들도 있지만, 대개 책이 어린이 교육에 바람직한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어린이 책은 종종 어린이 자신보다도, 우리 어른이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유명한 작가 모리스 샌닥의 ‘넛쉘 라이브러리’ 시리즈는 내 개인적 독서 경험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어린이를 만나게 해 준 최초의 작품이었다. 이 시리즈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보다 1년 먼저, 그러니까 1962년에 씌어진 책이다. ‘무슨 상관이람!(Pierre)’ ‘시끌벅적 악어 가족(Alligators All Around)’ ‘조니는 혼자가 좋아!(One Was Johnny)’ ‘닭고기 수프(Chicken Soup With Rice)’, 이렇게 네 권으로 구성됐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달리 작고 귀여운 판형에 간단한 일러스트로 구성된 소박한 책들이다. 소박하지만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맥스에 못지 않는, 씩씩하고 튼튼한 자아를 가진 어린이들 이야기가 가득하다.

‘무슨 상관이람!’은 정말로 어른 말을 안 듣는 어린이 피에르 이야기이다.

뭘 먹고 싶니? / 무슨 상관이람? / 달콤한 시리얼 먹을래? / 무슨 상관이람? / 의자에 거꾸로 앉으면 안 돼. / 무슨 상관이람! / 머리에 시럽을 부으면 어떡하니! / 무슨 상관이람?

엄마와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무슨 상관이야(I don’t care)’로 일관하는 피에르. 결국 부모는 그런 피에르를 포기하고 외출한다. 혼자 남은 피에르에게 배고픈 사자가 찾아온다. ‘너 혹시 죽고 싶니?’ ‘내가 널 잡아먹어도 되겠니?’라고 묻는 사자 앞에서 피에르는 의연하게 ‘무슨 상관이야’를 반복하다 결국 사자 뱃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피에르는 부모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오고, 자신만의 윤리를 스스로 찾아간다. 불쌍한 사자와도 좋은 친구가 된다.

모리스 샌닥의 ‘넛셀 라이브러리’ 시리즈 책 ‘조니는 혼자가 좋아’의 한 장면. 시공주니어 제공
모리스 샌닥의 ‘넛셀 라이브러리’ 시리즈 책 ‘조니는 혼자가 좋아’의 한 장면. 시공주니어 제공

‘조니는 혼자가 좋아!’는 혼자 있기를 즐기는 조니 이야기이다. 조니 방에 친구들이 하나, 둘, 셋 찾아오는 숫자 책이다. 하나, 둘 숫자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친구들이 찾아오지만, 조니는 친구가 많아진다고 해서 기뻐하지 않는다.

“잘 들어. 이제 수를 거꾸로 셀 거야. 수를 다 세고도 이 집이 비어 있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을 모두 잡아먹어 버릴 거야.” 열부터 숫자를 거꾸로 세면서 비로소 방 안에 혼자 남은 조니는 비로소 책을 다시 집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모리스 샌닥의 ‘넛셀 라이브러리’ 시리즈 책 ‘시끌벅적 악어가족’의 한 장면. 시공주니어 제공
모리스 샌닥의 ‘넛셀 라이브러리’ 시리즈 책 ‘시끌벅적 악어가족’의 한 장면. 시공주니어 제공

‘시끌벅적 악어가족’은 악어 가족의 우당탕탕 일상생활로 구성된 알파벳 책이다. 모리스 샌닥은 ‘동화적인 어린이’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어린이’의 일상생활로 알파벳 책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S 엄청 버릇없이 굴 때도 있어(shockingly spoiled)’ ‘V 에헴! 잘난 척을 하고(very vain)’ ’F 쉴 새 없이 장난치고(forever fooling)’처럼 어린이의 일상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열한다. 그리고 마침내 ‘닭고기 수프’에서 어린이들은 환상적인 열두 달의 여행을 떠난다.

모리스 샌닥의 ‘넛셀 라이브러리’ 시리즈 책 ‘닭고기 수프’의 한 장면. 시공주니어 제공
모리스 샌닥의 ‘넛셀 라이브러리’ 시리즈 책 ‘닭고기 수프’의 한 장면. 시공주니어 제공

이 시리즈 안에는 버릇없는 어린이, 함께 놀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어린이, 깔깔대고 잘난척하고 쉼 없이 장난치는 어린이가 지워지거나, 교정 받거나, 권선징악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어린이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성해나가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도울 부분은 어린이와 그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존재를 지우지 않은 채 기다려 주고, 위험에서 보호하는 일일 것이다. 어린이는 모험을 통해 자아와 관계, 지식에 대한 답을 구하고 스스로의 윤리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것이다.

모리스 샌닥 지음

시공주니어 발행ㆍ184쪽ㆍ3만 6,000원

참고로 ‘넛쉘 라이브러리’는 저자가 직접 연출한 애니메이션 ‘리얼리 로지(Really Rosie)’(1975)와 함께 즐기면 더욱 매력적이다. 캐롤 킹이 직접 곡을 붙여 노래한 이 애니메이션 뮤지컬의 백미는 마지막 편 ‘닭고기 수프(Chicken Soup With Rice)’다. 우리는 모리스 샌닥과 캐롤 킹이 함께 만든 아름다운 판타지 속에서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작은 동료들, 그냥 말썽꾸러기로만 보였던 어린이들의 사랑스러운 여행에 동참할 수 있다. 어린이에게 헌정된 당대 최고 음유시인의 노래 그 자체만으로도 어린이에 대한 동료 시민의 존중이라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건 한국에 정식 출시가 안 되어 있다. 애플 뮤직, 유튜브, 해외 출시 DVD 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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