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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의 몸과 삶] 해부학적 몸과 엉터리 몸

입력
2020.02.18 18:00
수정
2020.02.18 18:3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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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면역계통은 외부의 침입자뿐 아니라 우리 몸에서 이제는 제 몫을 하지 못하고 변화된 세포들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암세포는 이러한 제거 과정에서 미처 찾아내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몸의 면역계통은 외부의 침입자뿐 아니라 우리 몸에서 이제는 제 몫을 하지 못하고 변화된 세포들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암세포는 이러한 제거 과정에서 미처 찾아내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의대를 졸업하고 해부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한다는 것은 내가 졸업할 때나 지금이나 어찌 보면 정상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의대생 대부분은 환자를 돌보는 임상의사가 되고 싶어 하고 또 실제 임상의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한다. 그러니 남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학문 분야에서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혹시 있다면, 또 그러한 것을 ‘나만의 무엇’ ‘나스러움’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주류의 틀에서 벗어난 것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사람은 몸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습득하고(몸의 앎), 사람은 몸을 활용하여 세상 속에서 무엇인가를 하고(몸의 함), 그 결과 세상과 조화롭게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몸의 삶). 그러한 과정은 몸의 주인인 개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장자의 한 구절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 物謂之而然(물위지이연)”이라는 말처럼 ‘길은 가니 그리 만들어지고, 만물은 부르니 그리 되는 것’이라는 생각대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 알고, 행동하고, 살아가며 이 세상을 경험하고 변화시켜 왔다.

이제 여정을 떠나는 칼럼은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극히 비주류에 속하는 엉터리 이야기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것이 바로 나니까, 창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드러내 보이려 한다.

우리는 몸을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몸은 꽤나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몸을 이루는 세포는 흔히 100조개라고 하는데, 어떤 연구는 60조개라고 하고, 최근 연구에서는 30조개라고 한다. 2019년 7월 세계 인구는 약 77억명이고, 2020년 1월 우리나라 인구는 약 5,100만명이니까 우리 몸의 세포 수가 정확히 몇 개인지 상관없이 우리 몸은 지구보다 훨씬 더 큰 덩어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포의 종류는 최소 200가지 정도라고 하고 세포마다 모양과 크기가 다르고, 몸에 존재하는 곳도 다르다.

비슷한 특성을 가진 세포들은 서로 모여서 조직을 이룬다. 조직들은 적당히 섞여 한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위, 간, 피부와 같은 독립적인 기관을 만든다. 생명현상을 기준으로 여러 기관들을 묶어 호흡기계, 소화기계, 내분비계 등의 계통으로 분류한다. 몸을 이루는 세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직, 기관, 계통의 어디엔가 속해 생명 유지를 위해 맡겨진 기능을 수행한다. 장기도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정상 세포 중 일부가 어떤 이유로 비이상적으로 수가 늘어 주위의 정상 조직 속으로 파고들어 가면서 크기가 커지고, 결국 기능까지 망가뜨리게 되면 우리는 암세포라고 부른다. 암세포는 죽지 않으며, 주위 세포와 대화하지 않고, 미분화된 상태로 퇴화하여 원래의 성질을 잃어버린다. 게다가 세포분열의 통제에서 벗어나 무한정 수를 늘려간다.

사람이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남들보다 능력과 경험이 많다고 남들과 상의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거나 남의 일까지 빼앗아 직접 하게 되면 그 조직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고 심하면 와해될 수도 있다. 내가 잘 할 수 있어도 역할과 영역을 정하여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여야 그 조직은 잘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다.

만일 정상적인 장기나 조직이라도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위장의 속면은 위상피세포로 덮여 있다. 어떤 이유로 위상피세포가 소장의 상피세포로 바뀌는 현상을 장상피화생이라 하는데 그대로 놔두면 위암이 된다. 위에 있는 상피세포가 소장의 상피세포로 바뀌면, 위의 장상피세포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위는 위암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계통은 외부의 침입자뿐 아니라 우리 몸에서 이제는 제 몫을 하지 못하고 변화된 세포들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암세포는 이러한 제거 과정에서 미처 찾아내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계에서는 지각 변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계에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바람직한 정치계의 변화는 어떻게 해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뛰어난 실력을 지닌 정치인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바꾸는 것? 만일 정치적 역량이 뛰어난 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남의 일까지 다 해버린다면? 새로운 사람들로 바꾸었는데 정치계가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면? 정치계가 올바르게 변화하기는커녕 이 사회에 새로운 암으로 등장하여 골치를 썩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번 총선에서 우리 일반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잘못된 세포를 제거하고 제대로 된 세포로 채우는 일임이 명확하다. 혈연, 지연, 학연, 정당 등 이해관계를 떠나 정말 우리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할 일꾼을 가려내는 면역계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각자 자신이 있을 곳에서 살아 있듯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엄창섭 고려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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