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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피그말리온 효과와 신종 코로나 사태

입력
2020.02.14 04:30
수정
2020.02.17 10: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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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쇼핑몰 식당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쇼핑몰 식당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조각가 피그말리온(Pygmalion)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인 갈라테이아(Galatea)의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를 지켜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피그말리온의 사랑이 진심임을 알아채고 갈라테이아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기대하면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그리스 신화이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피그말리온 효과다. 원래 교육학자 로젠탈(Rosenthal)의 학생 성적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실제 성적을 향상시켰다는 실험에서 유래되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사전적인 믿음 혹은 기대가 실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쓰인다.

경제학에는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있다. 현 상황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미래에 대한 기대에 따라 그 결과는 긍정적일 수도 혹은 정반대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필자가 본업으로 삼고 있는 경제 전망은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자기실현적 예언과 관련이 깊은 영역이다. 경제 전망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요소들을 식별하고 이를 외생적으로 주어졌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경제전문가라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경제 활동을 고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은 전제는 경제 전망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경제 전망 자체를 좌우하지 못하는 최소한의 수준이어야 한다. 전제에 따라 전망 결과가 결정된다면 전망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설 연휴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우리 경제의 향후 성장 경로에 대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산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일부 제조업체는 생산을 멈출 수 있다고 하고, 관광업계는 내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울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백화점 등 대형 쇼핑몰이 일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고, 외부활동이 눈에 띄게 준 것도 사실이다. 온 국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차단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인 경제 활동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우리 경제의 2020년 성장률이 얼마만큼 떨어진다는 수치들이 종종 보도되고 있고, 필자에게도 비슷한 질문이 많이 오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경제의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제적 파장을 판단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는데,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경제 전망을 위해 전제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또한, 단기간의 경제 활동 위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보완될 수 있다. 국내 제조업의 일시적인 생산 차질은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생산량 확대로 보충될 수도 있고, 봄철 여행객의 감소는 여름철 여행객의 증가로 일부 상쇄될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어찌 될지, 제조업 생산과 소비 활동 위축이 실제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지는 적어도 2월은 지나가야 윤곽이 잡힐 것이다. 따라서 관측 가능한 데이터가 없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거시경제적 영향은 연구자가 무엇을 어떻게 전제하는 가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특정 상황을 간주하고 만들어낸 수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언론이 결과적으로 나타난 전망 수치만을 보도한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기회를 박탈당한 채 최종적인 숫자만을 각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실현적 예언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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