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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한 ‘기생충’ 배우들, 봉준호는 어떻게 찾아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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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한 ‘기생충’ 배우들, 봉준호는 어떻게 찾아냈을까

입력
2020.02.13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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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담당’ 이정은ㆍ박명훈, 연극ㆍ독립영화서 발굴

송강호ㆍ최우식 주춧돌 삼아 각본 쓰고 캐스팅도 맞춰

제92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ㆍ감독ㆍ각본ㆍ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 팀이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제92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ㆍ감독ㆍ각본ㆍ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 팀이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에 훌륭함이 있다면 그것은 배우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송강호를 중심으로 모든 배우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마치 핵융합을 하는 듯한 연기를 보여 줬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와 공식 행사 때마다 반복했던 말이다. 결코 자신을 낮추기 위한 겸양만은 아니었다. 아카데미영화상에서 배우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그 전초전이랄 수 있는 지난달 미국배우조합상(SAG)은 ‘기생충’ 주연 배우 모두에게 최고상인 앙상블상을 안겼다. 배우들은 ‘오스카 4관왕’의 또 다른 주역이었다.

‘기생충’에는 송강호와 이선균, 조여정 같은 유명 배우도 있지만, 박명훈과 장혜진처럼 낯설었던 얼굴도 있다. 봉 감독은 이 배우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낸 걸까.

반전을 책임진 문광 역의 이정은은 송강호만큼이나 봉 감독과 인연이 오래 됐다. 첫 만남은 마더’(2009)다. 이정은은 오디션을 거쳐 이 영화에서 단역을 맡았다. 그 인연을 잊지 않은 봉 감독은 나중에 이정은이 출연한 대학로 인기 뮤지컬 ‘빨래’를 보러 갔고, 목소리 변주까지 능수능란한 그의 연기에 감탄했다. 그리고 수년 뒤 ‘옥자’(2017)를 만들 때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 연기를 그에게 맡겼다. 그 인연은 자연스럽게 ‘기생충’까지 이어졌다. 봉 감독은 이정은에게 ‘기생충’ 콘티 한 장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재미있고 괴이한 걸 같이 해 보자.”

부리부리한 눈으로 “리스펙”을 외치며 관객들을 경악시킨 비밀 병기 박명훈도 빠질 수 없다. 봉 감독은 ‘옥자’ 개봉 당시 옆 상영관에 걸린 독립영화 ‘재꽃’(2017)을 보기 위해 들렀다. 거기서 박명훈을 발견하고 열광했다. “대단한 배우다. 술 취한 연기는 세계 최고다. 술 취함의 레벨을 주종 및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연기한다. 약간 실례지만 치열과 안구로도 독특한 뉘앙스를 뿜어낸다.”

봉 감독의 굳은 신뢰 때문이었을까. ‘기생충’ 촬영을 마친 뒤 박명훈은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처럼 자신을 숨겼다. 박명훈의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였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끊고, 새 작품 출연도 마다했다. 심지어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하고도 사람들 눈을 피해 다녔다. 박명훈은 ‘기생충’이 700만 관객을 돌파한 뒤에야 비로소 ‘묵언수행’에서 풀려났다.

기택(송강호)의 아내 충숙을 연기한 장혜진도 독립영화 ‘우리들’(2016)을 보고 찾아낸 배우다. 사실 ‘살인의 추억’(2003) 때 이미 출연을 제안했었지만, 당시엔 장혜진이 연기를 떠나 있어서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 ‘기생충’을 촬영하며 장혜진은 혼신의 힘을 다 했다. 해머 선수 출신이란 설정에 맞춰 무려 15㎏ 넘게 살을 찌웠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보면서도 장혜진이 영화 속 충숙이었다는 걸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송강호와 최우식은 ‘기생충’의 첫 번째 주춧돌이었다. 봉 감독은 두 배우를 부자 관계로 놓고 시나리오를 썼다. 최우식은 독립영화 ‘거인’(2014) 덕분에 ‘옥자’에 발탁됐고, ‘옥자’ 개봉 뒤풀이 자리에서 ‘기생충’ 출연이 결정됐다. 소소한 근황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우식이 “앞으로 운동을 좀 하고 싶다”고 말하자, 봉 감독이 수수께끼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운동은 나중에 해. 마른 체형이면 좋겠다.”

원래 가족은 발가락까지 닮은 법이다. 봉 감독은 캐스팅을 할 때 외모와 분위기도 고려했다. ‘제시카 징글’의 주인공 박소담은 “정확하고 예리한 표현력”을 갖춘 데다 “한눈에 가족이란 게 납득될 만큼” 최우식과 닮아서 봉 감독의 눈에 쏙 들었다. 특히 두 사람의 쌍꺼풀 없는 눈매가 판박이다.

‘기생충’에 이유 없이 출연한 배우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카메오까지도 말이다. 기우(최우식)에게 과외 자리를 소개하는 친구로 박서준이 등장한다. 최우식과 박서준은 실제로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다. 봉 감독은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배우를 찾다가 박서준을 낙점했다. 남다른 친분 덕분에 연기 호흡이 좋았음은 물론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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