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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김기현 비위 제보, ‘요약정리’라더니

입력
2020.02.12 18:00
수정
2020.02.12 19:5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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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기 제보 가필ㆍ가공 보도에

터무니없는 허위 조작으로 몰아

靑, 대놓고 거짓말 한 것 아닌가

지난해 12월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윤도한(왼쪽) 국민소통수석과 노영민 비서실장이 휴대폰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2월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윤도한(왼쪽) 국민소통수석과 노영민 비서실장이 휴대폰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앞머리에 등장하는 범죄 혐의 내용은 자유한국당 소속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위와 관련한 청와대의 범죄첩보서 생산이다. 검찰이 청와대의 선거개입과 하명수사 의혹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증거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12월 초 이 문건이 논란이 됐을 때, 청와대는 비서실 행정관과 캠핑장에서 알게 된 지인이 제보한 내용이라 했지만,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여당 소속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최측근인 송병기 부시장으로 드러났다. 민선시장 비위 수집 논란에 대해선 송병기의 제보를 ‘요약 정리’한 것으로 정상 절차를 거쳐 경찰에 이첩됐다고 했다.

며칠 뒤 비위 제보가 가필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청와대는 허위 보도라면서 누가 거짓 주장을 퍼뜨리고 있느냐고 발끈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12월 7일 1면 기사로 낸 청와대의 제보 가필 의혹에 대한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서면브리핑 내용이다. 국민은 청와대가 허위 발표를 했고, 하명수사도 사실이라는 심증을 굳힐 것이라며 사실과 다른 보도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며칠 뒤 또 다른 언론사가 다시 제보 가공 의혹을 제기했을 때는 허위 조작 보도라면서 터무니없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서면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은 청와대의 진정서 가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송병기가 지방선거 6개월 전인 2017년 10월 9일 보내 준 김기현 시장 비위 관련 진정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모 행정관의 첨삭과 가공을 거쳐 범죄첩보서로 생산됐고,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 상부 보고를 거쳐 울산경찰청 수사의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김기현 해외출장 시 레미콘업체 대표 동행 소문(?)이 있는 등 친밀한 사이’라는 진정서 내용이 ‘동행하는 등 김기현과 친밀한 사이’로, ‘000과 골프를 치고’는 ‘골프 접대와 금품수수하고’로 고친 식이다. 경찰 수사 진행에 불리한 사실은 삭제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10여개 부분에서 가공됐으며, 진정서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범죄첩보서를 생산했다는 것이다.

공소장엔 송병기의 진정서와 범죄첩보서 주요 내용이 모두 기재돼 상식의 눈으로도 단순한 요약 정리가 아니라는 점과 그 의도성을 짐작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공신력 있는 언론사’를 운운하며 허위와 조작으로 몰아붙이던 청와대의 과잉 대응이 위법성 의혹을 잠재우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시도가 아니었느냐는 의심까지 든다.

의아한 것은 앞선 보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청와대 태도다. 검찰의 날조라고 주장하기는커녕 입을 다물고 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볼 일이기는 하나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공소장 내용을 추측과 예단이라고 깎아내린 입장문에도 범죄첩보서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범죄첩보서 생산자인 문모 행정관은 국정운영 관련 여론수렴, 민원처리, 총리실 연락협조 업무 담당자로, 범죄첩보서 작성은 그의 업무가 아니며, 현행법상 민정수석실은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감찰 권한이 없고, 범죄정보 수집 및 범죄첩보 보고서 작성도 할 수 없다. 민원이나 진정을 날 것 그대로 공문 형태로 관련기관에 이첩할 수 있을 뿐, 이를 기초로 범죄정보 수집이나 범죄첩보서를 작성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요약정리라고 강변하며 가필ㆍ가공 의혹을 부인한 배경이 여기에 있었던 건 아닌가 추측한다. 청와대 자체 조사로도 가공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을 터인데 허위 보도로 몰아간 청와대의 서면브리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격이다. 거의 허위 공문서 작성 수준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그 경위가 궁금하다. 절반의 진실은 완전한 거짓보다 더 악하다는 말이 있다. 진보진영의 내부고발자가 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통치할 수 없는 정권이라면 나라를 위해 빨리 무너지는 게 낫다고 했다. 말에 천금의 무게를 가져야 할 청와대다. 말의 신뢰성이 무너지고 있다.

정진황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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