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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우의 Biz잠망경] 기업가 정신 충만했던 창업 1세대의 시대

입력
2020.01.2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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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타계로 완전히 막 내려 

 2,3세는 기업 겨우 지키거나 경영권 분쟁으로 날밤 새워 

 기업가의 혁신 에너지 없으면 한국 경제 미래 밝지 않아 

22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을 마친 뒤 신동빈(가운데)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유가족들이 운구행렬을 따르고 있다. 롯데지주 제공
22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을 마친 뒤 신동빈(가운데)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유가족들이 운구행렬을 따르고 있다. 롯데지주 제공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2000년 즈음으로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과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간 ‘형제의 난’이 진행 중일 때다. 현대그룹 출입기자 간에 취재 경쟁이 치열했다. 현대가의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한마디라고 듣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집무실로 따라갔다. 비서진에게 쫓겨나기도 했지만 한마디만 들어도 자잘한 특종은 되는 분위기였다.

당시 정 전 명예회장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이미 치매 유사 증상이 와서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불과 1, 2년 사이에 급격히 나빠졌다. 85세의 나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서울 종로구 계동 사옥에서 목격한 정 전 명예회장은 어린 아이 같았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사람들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로운 듯한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70세 전후까지 계속 완만하게 성장하다 70세가 넘어가면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어 마지막 죽음에 이른 순간에는 다시 아이처럼 변하는 것이다.

승용차에 스스로 탈 수 없으니 경호원이 정 전 명예회장의 몸을 달랑 들어서 승용차 좌석으로 모셨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차창 밖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는 모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기업을 성장시키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고.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정 전 명예회장도 생로병사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섭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해 자연으로 돌아갔다. 형제의 난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그는 눈을 감았다. 당시 청운동 자택에는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형제의 난이 치열했던 와중에도 자식들과 며느리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북한의 고위 관계자들도 조문을 했다. 금강산 관광의 물꼬를 튼 인물이 정주영이었다.

하지만 당시 현대그룹은 내부적으로 곪아 있었고 그룹은 사실상 해체의 길을 걸었다. 현대건설을 주축으로 하던 현대그룹은 정몽구와 정몽헌 형제의 난으로 계열 분리의 길을 걸었다. 정몽준의 현대중공업도 계열 분리를 했다. 정 전 명예회장의 사망과 동시에 당시 현대그룹의 홍보를 담당하던 현대 PR본부는 문을 닫았고, 홍보실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현대건설은 그룹의 부실을 몽땅 떠안고 사실상 은행 소유로 넘어갔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그룹의 부실을 특정 회사로 몰고 다른 계열사의 부실은 털어주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결국은 은행, 즉 국민 세금으로 떠안는 방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계열사들로 부실이 이전되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대그룹은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등으로 분할됐다.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은 몇 년 전 현대가의 손을 떠났다.

그 당시 정부의 구조조정 방식은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현대그룹의 부실이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몽헌 진영에 계열 분리를 압박했다. 덕분에 다른 계열사들은 부실을 털고 ‘클린 컴퍼니’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당시 김창근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사석에서 “누군가 하늘에서 그랜드 디자인을 한 것처럼 현대그룹이 완벽히 계열 분리가 됐다”고 감탄했다.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SK그룹은 SK글로벌이 엄청난 부실 때문에 고민스러운 분위기였다. 부실은 쌓이는데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SK는 일동레이크 골프장을 농심에 팔았다. “골프장 운영에 얼마나 들길래 그걸 팔았냐”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은행에 구조조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미 SK도 당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롯데의 형제의 난도 진행 상황은 현대그룹과 유사했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동원해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을 냈고 신 전 회장의 친필문서와 육성녹음이 등장하고 형제간에 치열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것 등이 그렇다.

어쨌거나 신 전 회장의 타계로 사실상 우리나라 창업 1세대의 시대가 이제 완전히 막을 내렸다. 창업 1세대들은 사실상 한국경제를 견인해 우리나라를 세계 10권 경제 강국에 올려놓은 신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기업가 정신’이 충만했고 혁신의 에너지가 넘쳤다. 하지만 이후 세대들은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후 세대는 창업 1세대가 일궈놓은 기업을 겨우 지키거나 경영권 분쟁으로 날밤을 새우고 있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부 선임기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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