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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엘리트의 포퓰리즘

입력
2020.01.0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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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진중권(왼쪽 사진) 전 동양대 교수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일 JTBC 뉴스룸 신년 특집 대토론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JTBC 영상 캡처
진중권(왼쪽 사진) 전 동양대 교수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일 JTBC 뉴스룸 신년 특집 대토론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JTBC 영상 캡처

‘엘리트 정화(淨化)’가 한창이다. 우선 검찰ㆍ언론이 대상이다. ‘개검’(개+검찰)이나 ‘기레기’(기자+쓰레기) 같은 멸칭이 도처에 흔하다. 태도가 흐릿하면 한때의 아군에게도 매몰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 힘을 보태지 않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여권 지지층에 의해 지목된 대표적 부역자다. 출당 압박까지 당하는 등 고초를 겪고 있다.

물론 토양 없이 현상이 배태되지는 않는다. 엘리트와 국민의 수직 연대를 애초 흔들어놓은 건 주권자를 따돌리려 한 통치 엘리트들이다. 그들에 대한 반감은 자생적이다. 하지만 분노를 자극하고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데에는 설득이 필요하다. ‘타락한 엘리트’와 ‘순수한 국민’이라는 레토릭을 대중의 내면에 신념으로 심어주는 데마고그(선동 정치인)가 관변에 분명히 존재하고 그 핵심 중 하나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라는 게 ‘진보 논객’으로 이름을 떨쳐 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주장이다. 연초 한 방송 토론회에서 유 이사장을 가리켜 “전체주의 선동가”라는 매도를 서슴지 않았다.

진 전 교수는 위악적이다. 그의 엘리트연(然)은 노골적이다. 역시 진보 성향 저명 논객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대중이 드러내는 열정의 부정적 측면이 긍정성을 압도하려 할 때 진중권은 여지없이 나타나 따갑게 후벼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반(反)지성에 그는 타협이 없다. 조롱하고 훈계한다. 열성적인 조국 전 법무장관 지지자들을 ‘좀비’라 부르며 ‘부모가 아니라 학생이 치르는 게 시험’이라는 당연의 당연함을 주장하려면 매번 좀비들과 논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개탄한다.

과거 정의당 동지였던 유 이사장을 진 전 교수가 맹공하는 건 그가 ‘탈(脫)진실’ 전위의 진보연(然) 포퓰리스트라는 판단에서다. 전력이 있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 여당 의원이던 유 이사장은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검증하겠다는 건 터무니없는 짓”이라며 ‘PD수첩’의 시도를 폄하하고 훼방했다. 황우석 신화로 업적을 쌓으려는 자기 진영 이해관계에 매몰돼서다. 그때도 진 전 교수는 “조국을 진실 위에 올려놓는 게 언론의 임무”라며 유 이사장의 반대편에 섰었다.

정말 진실이 없다고는 유 이사장도 믿지 않을 것이다. 걸핏하면 거짓말 논란을 부르는 그의 상대주의는 그래서 전략적인 듯하다. 토론에서 진 전 교수는 “유 이사장의 망상을 대중은 현실로 믿고 있다”고 경고했다. 무책임한 음모론의 위험성을 상기시킨 것이다. 좌우 막론하고 포퓰리스트의 관심은 실제 세상이 어떤지 대신 대중이 뭘 좋아할지에 가 있게 마련이다. 수용자의 취향에 최적화한 콘텐츠를 먼저 보여주게끔 설계된 폐쇄적 알고리즘으로 확증 편향을 부추기는 소셜 미디어는 포퓰리스트에게 유용한 대중 동원 수단이다. 기존 권위의 해체를 위해 ‘레거시 미디어’ 불신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유 이사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포퓰리즘은 서로 통한다.

사실 진 전 교수가 아니라 유 이사장이 진짜 엘리트에 가깝다. 다만 유 이사장의 영합이 진 전 교수의 계몽보다 은밀하다. 그래서 위선적이다. 좌파 지식인으로 통하는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에 따르면 민주화 운동 계열 진보 엘리트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 엘리트와 대등한 수준의 기득권 세력이 됐지만 여전히 저항ㆍ대안 세력인 양 굴면서 대중을 기만한다.

세계적인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분위기에서 촛불 혁명이 이룬 성취는 예외적이다. 그러나 지나친 효능감은, 대중의 환멸과 분노를 지렛대로 우파 기득권 라이벌을 축출하고 지배 체제를 독점하려는 현 집권 엘리트 세력의 사실상 친위 쿠데타에 활용될 수 있다. 지금은 물어야 할 때다. 권위를 어떻게 하는 게 옳은가. 해체해야 하나, 재건해야 하나. 엘리티즘의 대안은 포퓰리즘이 아니다.

권경성 문화부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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