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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북한의 ‘정면돌파전’

입력
2020.01.0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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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새로운 길’의 윤곽이 드러났다. 북한이 명명한 이 길의 이름은 ‘정면돌파’이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고 (핵)억제력을 강화하면서 자력갱생하는 길이다. 한마디로 미국식 요구와 대화법을 수용하지 않고 대북제재를 버티는 ‘길’이다. 직접적인 도발 예고나 핵ㆍ미사일 모라토리엄 파기, 북미대화 중단과 같은 우려했던 ‘선언’은 없었다. ‘충격적 실제행동’과 ‘전략무기’를 얘기했지만, 모호성을 유지해 압박 수위를 조절했다. 절제와 신중함, 정책적 운신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신중함이 읽혀진다.

북미관계를 ‘교착상태의 장기성’으로 규정했다. 교착은 ‘중단’과는 결이 다르다. 다른 입장이 부딪혀 진전 없는 상태, 곧 ‘진행형’을 함축한다. 협상의 문은 열어 둔 것이다. 다만 억제력의 폭과 강도, 비핵화 및 북미 ‘합의’ 파기 여부는 미국의 입장과 적대시정책 철회에 따라 조정하겠단 것이다. 이런 신중함은 미국 대선 판세의 불확실성,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 중국ㆍ러시아의 ‘중재’ 목소리 등을 고려한 수위 조절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길은 향후 1년간의 불확실성에 대응한 ‘과도적’이고 ‘가변적’인 성격의 길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장기전’은 대내적으로 제재를 버티는 ‘장기전체제’ 구축, 대외적으로 향후 1년간의 정세 불확실성을 ‘관망’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정치적 시간’을 의미한다. 제재에 맞선 국가 운영의 ‘장기전체제’로의 조정, 미국 국내정치 불확실성 및 대선 판세의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판을 완전히 깨지 않으며, 일정한 긴장성을 유지하기 위한 용도다. ‘과도적 운신의 장치’로 볼 수 있다. ‘판을 깨지 않는 긴장성’은 불안정한 트럼프 행정부를 ‘적절하게’ 압박하고 차기 정권을 대비한 메시지, 중러와의 연대를 고려한 수준에서다.

‘새로운 전략무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판을 깨지 않는 긴장성’을 새로운 전략무기의 디스플레이 수준으로 ‘조절’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대미 압박과 정세를 조절하는 핵심 ‘조절 레버’로 전략무기 카드를 흔든 것이다.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약속의 흔들기 공세, 열병식 신종 전략무기 공개, 한미연합훈련 시즌 대응 무기 발사, 북극성-3형(SLBM) 잠수함 사출 실험, 다탄두미사일(MIRV) 개발 노출, 신종 대공미사일(북한판 S-400) 실험발사 등이 가능하다.

‘새로운 길’은 지난해 4월 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이미 예고됐다. 당시 제시된 ‘국가건설사상’에 집약돼 있다. 자주노선, 자립경제, 당의 영도, 인민대중 제일주의가 골간이다. 여기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국가전략, 행동강령, 설계도가 담겨 있다. 이번 전원회의는 여기에 입각해 있다. 그런데 김일성시대 복고풍 용어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원회의 한 대목에서 ‘힌트’가 있다. 미국의 변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병진의 길을 갈 때나 경제에 총력 집중하는 지금이나 외부환경은 변화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미국, 그것의 핵심은 ‘제재’다. 북한은 변화를 원했지만 미국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국가건설사상’, ‘정면돌파전’을 관통하는 것은 ‘제재’의 부당함과 미국의 이중적 태도다. 결국 제재가 종교화된 국가인 미국을 상대로 북한은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장기전을 선언한 것이다.

‘새로운 길’은 지난해 4월 대강의 기조를 잡고 북미협상이 불투명해지는 가운데 구체화됐다. 김 위원장 백두산 군마 등정에서 밝힌 ‘웅대한 작전’ ‘새로운 전략노선’도 그런 맥락에 있다. 그만큼 상당한 준비와 고민이 있었단 얘기다. 아마도 ‘새로운 길’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1~2월에 한국과 미국이 북미협상의 불씨를 살리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대북 메시지’와 ‘선언적 조치’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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