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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리포트]’소리에 미치다’ 네이버도 반한 가우디오랩

입력
2020.01.06 04:40
수정
2020.01.06 09:1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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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오현오 대표 “사람들의 귀를 보호하는 오디오 기술 개발”

중학생 소년의 낙(樂)은 ‘전축’이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샤프 전축 앞으로 달려가 록 밴드 U2의 레코드판(LP)을 올려 놓고 음악, 아니 소리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LP를 들으며 소리에 반한 소년은 평생 소리를 쫓는 일을 하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리고 꿈이 현실이 됐다.

“태어날 때부터 오디오를 하라는 팔자에요. 이름에 ‘오’자가 2개나 들어 있잖아요.” 가우디오랩의 오현오(47) 대표는 오디오 기기라는 말보다 전축이 더 익숙하다. “어려서 U2, 아하, 왬 등 전축으로 듣는 외국 가수들의 LP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나중에 자라면 LP 음악들을 담아서 갖고 다니며 들을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가 휴대용 음악재생기인 ‘아이팟’으로 현실화했죠.”

[저작권 한국일보] 오현오 가우오디오랩 대표가 영상과 음악파일에서 음량을 일정하게 자동조절해 주는 라우드니스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오현오 가우오디오랩 대표가 영상과 음악파일에서 음량을 일정하게 자동조절해 주는 라우드니스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전축 듣던 소년이 국내에 희귀한 음향학 박사가 되다

그렇다고 오 대표는 소리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꿈을 향해 집요한 열정을 키웠다. 그는 소리를 연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학의 전자공학과에 진학해 음향공학을 전문으로 연구했다.

그는 당시 서울대와 연세대 등 전국 대학 중 두 곳에만 있었던 음향연구실 가운데 연대 음향연구실 출신이다. 그가 박사 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몸 담았던 음향연구실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담당 교수들이 정년 퇴직하면서 더 이상 음향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남겨두면 좋았을텐데, 요새 누가 음향 연구를 하냐며 없애 버렸어요.”

오 대표는 음향연구소를 나와서 2002년 LG전자에 입사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TV에 들어갈 음향을 연구해 ‘클리어 보이스’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TV가 얇은 액정화면(LCD)으로 바뀌면서 스피커들이 화면 뒤로 이동했어요. 그러니 소리가 잘 안 들렸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클리어 보이스는 사람의 말소리가 음악 등 다른 효과음에 묻히지 않고 선명하게 들리도록 만드는 기술이에요.”

그가 8년간 몸 담았던 LG전자를 2010년에 그만 둔 것은 소리 기술의 대명사로 꼽히는 세계적 기업 돌비사 때문이었다. “돌비는 음향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 업체였는데 알고 보니 기술보다 마케팅을 더 중시했어요. 당시 돌비의 음향 기술을 사용한 TV제조사들은 TV 1대당 1달러의 기술사용료를 돌비에 줬어요. 돌비는 연간 조 단위 매출 가운데 절반 가량을 가만히 앉아서 기술사용료로 벌었죠.”

그때 오 대표는 돌비처럼 표준이 될 만한 음향 기술을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창업을 했다. 2010년에 만든 첫 번째 회사는 헤드폰에서도 마치 주변을 둘러싼 여러 대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처럼 소리를 들려주는 서라운드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국제 동영상압축표준전문가그룹(MPEG)에서 합의한 ‘MPEG H’라는 표준 규격에 포함됐다. 일본 소니 등이 내놓은 서라운드 헤드폰에 이 기술이 들어갔다.

2014년 4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PEG 표준회의는 오 대표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당시 회의의 화두는 가상현실(VR)이었어요. 마침 페이스북이 세계 최대 VR업체 오큘러스를 인수했죠. 앞으로 VR이 기회의 땅이라고 봤어요.”

오 대표는 회의에 함께 참석한 친구와 스페인의 세계적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명물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에서 두 번째 창업을 논의했다. “VR 헤드셋을 쓰면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소리의 위치가 달라지는 기술을 개발하자고 의기투합했죠. 돌비도 개발하지 못한 기술이에요.”

그렇게 이듬해 현재 회사인 가우디오랩이 탄생했다. “창업에 영감을 준 가우디 이름을 사명에 붙였어요.”

첫 번째 회사에서 갈라져 나온 가우디오랩에는 30명의 직원 가운데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6명의 음향학 박사들이 모여 있다.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음향학 박사를 국내에서 이처럼 많이 모으기란 대기업도 힘든 일이다. 모두 서울대와 연대 음향연구실이 마지막으로 배출한 인재들이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가 올해 새로 선보일 사운드바를 점검하고 있다. 가우디오랩 제공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가 올해 새로 선보일 사운드바를 점검하고 있다. 가우디오랩 제공

◇가우디 성당에서 할리우드를 겨냥한 창업을 하다

이들은 VR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에 들어가는 음향 기술을 개발해 공급한다. 우선 VR 음향을 개발하는 일을 시작했다. VR에서 중요한 것은 영상과 소리의 방향이 일치하는 것이다.

고개를 돌려서 측면의 영상을 보는데 소리가 정면에서 나오는 방향 불일치가 일어나면 이용자는 VR에 몰두하기 힘들다. “이용자가 VR 헤드셋을 착용한 상태에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영상의 방향에 맞춰 소리도 따라 움직여야 해요. 우리는 이용자가 고개를 돌릴 때 달라지는 소리의 위치값을 계산해 해당 위치에서 실시간으로 소리가 들리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오 대표는 이 기술로 2016년에 50억원을 투자 받았다. 일단 돌비처럼 이 기술을 들고 2017년에 미국으로 가서 디즈니, 드림웍스 등 VR을 준비하는 할리우드의 대형 영상제작사들을 만났다. 다들 가우디오랩 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VR 시장이 생각처럼 빨리 열리지 않았다. “1년 내내 영화 제작사들과 디렉TV 위성방송을 제공하는 AT&T 등을 만났는데 VR 시장이 얼어붙었어요. 결국 VR 시장을 기다리다가 우리가 먼저 죽을 것 같아서 2018년에 귀국했죠.”

그때 돌파구로 개발한 기술이 ‘라우드니스’다. 라우드니스 기술은 영상마다 들쭉날쭉한 음량을 듣기 좋도록 균일하게 조정해 준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 수 많은 영상들이 올라오지만 음량은 제각각이다. 어떤 영상은 소리가 작아 볼륨을 키우고 들었는데 다음 영상이 소리를 크게 키워 만들었다면 갑자기 소리가 커져 깜짝 놀라게 된다. 특히 이어폰을 착용한 상태에서 음량이 갑자기 커지면 청력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라우드니스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음량을 자동으로 동일하게 조정해 이용자의 귀를 보호해 준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가 아끼는 하베스 스피커 앞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가우디오랩 제공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가 아끼는 하베스 스피커 앞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가우디오랩 제공

◇귀를 다치게 하는 영상마다 다른 소리, 해법을 제시하다

TV 방송은 청력 보호를 위해 프로그램들이 일정한 소리를 내도록 음량 기준값에 맞춰 정부에서 규제하지만 OTT나 유튜브 등 인터넷 서비스는 이런 규제가 없다. “오디오 전문단체인 오디오엔지니어링소사이어티(AES)에서 국제 표준을 만들어 권고하고 있어요. 권장값이 TV 방송은 -24 LUFS(Loudness Unit referenced to Full Scale 오디오 허용 최대치), 휴대(모바일) 기기는 -16 LUFS입니다.” LUFS는 최대치에서 얼마나 줄였는지 마이너스(-) 기호로 표시하므로 숫자가 작을수록 소리가 크다는 뜻이다.

유튜브는 자체적으로 -14 LUFS를 권장값으로 갖고 있지만 영상 제작자가 이를 잘 몰라서 이보다 큰 소리로 만들어도 음량을 낮춰 내보내지 않는다. “-14 LUFS보다 큰 소리를 장시간 들으면 청력 손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해 2월에 청소년들이 80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매일 1시간 이상 들으면 회복할 수 없는 청력 손상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80㏈은 -20 LUFS 정도 됩니다. 유튜브의 권장값(-14 LUFS)은 이보다 높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유튜브 소리를 매일 1시간 이상 크게 들으면 청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어폰 사용 시간을 조절할 필요가 있어요.”

이 때문에 애플은 아이폰에 이어폰 사용 시간을 보여주는 기능을 넣었다. 안드로이드폰은 이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사람의 귀가 음량이 클수록 좋은 소리로 착각하는 점이다. “사람은 20헤르쯔(㎐)에서 2만㎐ 사이의 소리를 듣는데 아주 낮은 주파수와 높은 주파수를 잘 듣지 못하고 중간 소리만 듣습니다. 음량을 키우면 낮은 주파수와 높은 주파수도 잘 들려서 소리가 좋다고 착각하죠. 반면 귀는 혹사당합니다.”

이를 의식해 요즘 나오는 음악들은 아예 음량을 키워 놓았다. “최신 곡들의 음량은 -6, -7 LUFS 정도 됩니다. 반면 1980, 90년대에 나온 조용필, 서태지의 노래들은 이보다 LUFS 수치가 높아서 작게 들립니다.”

따라서 예전 노래와 요즘 노래를 잇따라 재생하면 음량이 서로 다르다. 가우디오랩의 라우드니스 기술은 이를 동일하게 맞춰 준다. 오 대표는 마치 키 높이를 맞추듯 소리 값을 알아서 조정하는 이 기술을 ‘라우드니스 SDK’라는 소프트웨어 로 만들어 기업들에게 판매한다.

최근 네이버가 이를 구입해 음악과 영상에 적용했다. “네이버, 벅스뮤직, 팟빵, SK텔레콤의 음악서비스 플로 등에 라우드니스 SDK를 제공했습니다. 따라서 이 업체들의 영상이나 음악 서비스를 이용할 때 콘텐츠마다 볼륨을 조정하지 않아도 일정한 음량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죠.”

이 기술이 어려운 것은 기준 값보다 작은 소리를 키우고, 큰 소리를 줄여야 하는점이다. 소리를 키우면 잡음이 함께 커지고, 줄이면 고음과 저음이 찌그러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라우드니스 기술은 잡음을 키우지 않고 고음과 저음이 찌그러지지 않도록 막는 보호회로가 들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경쟁력이죠.”

소리에 미쳐서 오디오 외길 인생을 걷는 오 대표이지만 쉴 때는 되도록 음악을 듣지 않는다. “소리에 대해 남달리 예민하다보니 어느 순간 소리를 듣는 게 즐겁지 않아요. 계속 연구 때문에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청력도 안 좋아졌죠. 그래서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귀를 쉬게 합니다.”

한때 열심히 모았던 ‘전축’도 모두 없앴다. 정말 아끼는 영국의 하베스 스피커만 사무실에 갖다 놓고 가끔 직원들과 음악을 듣는다. “하베스는 영국 BBC 방송이 모니터용으로 사용하던 스피커에요. 작은 크기인데도 정직한 소리를 아주 잘 내죠.”

오 대표는 새해에 라우드니스 기술을 들고 해외로 나갈 예정이다. “영상메신저 ‘틱톡’으로 유명한 중국의 바이트댄스와 이미 라우드니스 공급 협의에 들어 갔습니다. 일본 업체들과도 접촉할 생각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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