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데이터로 본 한국인] 한국인의 일상 속‘빨리빨리’… “질보다는 편리함^편안함”

입력
2020.01.03 18:00
수정
2020.01.03 18:34
21면
0 0

2020년이 밝았다.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 속에 새로운 희망과 다짐이 묻어난다. 하지만 고단하고 팍팍한 삶이 더 나아질 거란 기대나 자신감은 찾기 힘들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자리 잡은 비관적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빠르게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고단함과 불안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 동안 또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날까. 이를 전망하기에 앞서 우선 한국인의 일상 속 특성을 몇 가지 지표를 통해 살펴보았다.

시간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인

시간 기근(time poor)은 일상에서 해야 할 일에 비해 시간이 부족한 상황을 말한다. 절대적 시간 부족도 그런 현상을 일으키지만, 개인의 주관적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초조함도 시간 기근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갑자기 여유시간이 생기면 오히려 불안해질 만큼, 늘 쫓기며 살아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이 여전히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출발하는 버스에 무리하게 승차하지 마세요’ ‘버스 정차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세요’라는 주의 문구가 꽤 오래 전부터 버스에 붙어 있지만 별 변화가 없다.

‘빨리’는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단어다. 또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빨리 습득하는 단어가 ‘빨리빨리’이다. 시장에서 이런 흐름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지표가 있다. 바로 음식과 관련된 제품과 서비스다. 최근 큰 성장세를 보이는 ‘가정간편식’과 모바일로 주문과 결제를 쉽게 하는 ‘배달 음식’이 대표적이다. ‘가정 간편식’은 ‘HMR(Home Meal Replacement)’라고도 불리는데, 바로 또는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가정식 스타일의 완전ㆍ반조리 형태 제품이다.

2019년 가정 식품 세분시장 현황보고서(농림축산식품부,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가정간편식 국내 출하 실적은 2013년 1조6,058억원에서 2017년 2조7,421억원으로 최근 5년간 70.8%라는 높은 시장 성장세를 보였다. 그간의 높은 성장률로 인해 향후 증가세가 다소 약해지겠으나, 2022년 출하액 기준 5조원을 넘을 정도로 계속 성장할 것이다.

밥도 빨리빨리, 간편식 배달 급증

2019년 5월 조사된 닐슨 리테일인덱스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볼 수 있다. 일반 소매점에서 가정간편식 판매가 계속 늘고 있다. 가정간편식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것 중 즉석밥, 레토르트, 즉석죽, 포장김치 시장의 성장률은 두 자릿수 이상 나타나고 있어, 다른 식품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또 배달앱 시장 성장도 편의성을 추구하는 한국 특유의 소비 행태를 보여 준다. 국내 배달앱 시장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2018년 말 기준 약 3조원 규모를 넘어섰으며, 이용자가 2,500만으로 추산됐다. 또 매년 폭발적인 성장률을 보여 주고 있다. 최근 국내 1위 배달앱 사업자인 ‘배달의 민족’이 독일계 기업에 인수ㆍ합병된 뉴스가 소비자들 사이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배달앱이 일상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편리함과 신속함을 찾는 요구는 도시화, 가정생활의 변화, 1인 가구 증가 등의 인구 사회적 변화로 인해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를 위한 자기 계발도 집에서

통계청 생활시간조사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최근까지 일상 시간의 구성변화를 살펴보니 일과 학습 등의 생활의무시간은 한 시간가량 줄었다. 일과 여가의 조화로운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변화를 고려하면 생활의무시간의 감소는 바람직한 변화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줄어든 의무시간이 곧 여가 시간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의무시간 영역에서 줄어든 한 시간은 자기 계발 등 필수생활시간의 증가로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양상은 그대로 나타났다. 주 52시간의 도입으로 현재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그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쓰겠는지를 질문했더니 ‘자기 계발을 위해’라는 응답 비율이 38.9%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자신의 휴식을 위해’(24.4%), ‘가족을 위해’(23.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도, 여유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한편 자기 계발 활동의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일상 속에 자주 활용하는 모바일 앱 이용 행태를 조사한 결과, ‘요리’와 ‘공연ㆍ경기관람’ ‘피트니스’ 등이 높은 순위에 올랐는데, 특히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피트니스’와 ‘인테리어’ 활동 성장 속도가 두드러졌다. 특히 ‘피트니스’ 그룹은 최근 떠오르는 ‘홈트레이닝’ 트렌드를 반영하며 셀프 운동법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주목받고 있다.

편리와 편의 추구는 자발적인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다.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한 소비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또 개인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의 합리성에 따라 저마다의 소비 패턴을 구성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인의 소비 행태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점점 더 상품ㆍ서비스의 질 같은 전통적 고려 요소보다는 편리함과 편안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런 소비 행태의 변화는 세대나 계층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를 것이다. 성장 지향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은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구호가 배부른 푸념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비물질적 가치를 중시하거나 워라밸에 비중을 크게 두는 개인이라면 여가를 더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소비행태에 대한 조사가 개개인의 욕구나 지향하는 가치 등을 알아내는 데 효과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편식은 ‘빨리’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이다. 하지만 ‘빨리’를 추구하는 내적 요인이 여유로운 여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지, 아니면 또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추가적 조사가 필요하다. 또 홈트레이닝 유행이 편안함을 추구하는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인지, 경제적 혹은 상황적 어려움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인지도 더 조사해 봐야 한다. 이런 조사를 통해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강경란 (닐슨코리아 상무, 포스텍 데이터사이언스센터 기획위원)

한국일보-포스텍 데이터사이언스센터 공동기획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